이관우 작가 초대전…도장으로 풀어낸 '존재와 관계' 미학

박종진 기자 / 기사승인 : 2026-05-10 16: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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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선갤러리,이달 21일까지 전시…수만 개 도장으로 빚은‘응집'의 울림
반복의 수행 통해 인간 사회의 근원적 생명성을 다시 묻다

[SWTV 박종진 기자]‘도장’이라는 가장 한국적이고도 일상적인 매개를 통해 인간 존재와 사회 구조, 관계와 시간의 축적을 탐구해온 이관우 작가의 전시가 주목받고 있다. 개인화가 심화되고, 과잉 연결 속에서도 관계의 단절과 고립감이 커지면서 개인은 파편화되고, 공동체 의식은 약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이 작가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Condensation 응집  61x61cm Mixed media(Korean Stamps) on Panel 2026

 

서울 종로 장은선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 작가 초대전은 2023년 대만 국립중정기념당 전시 이후 4년만의 국내전으로, 이달 21일 까지 신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수천, 수만 개의 도장이 화면 위에 빼곡히 찍혀 형성한 구조는 관람객에게 압도적인 시각 경험을 제공한다. 

 

이 작가는 도장을 통해 인간 사회의 구조를 이야기한다. 이는 이 작가의 예술 세계가 사람이 떠난 오래된 빈집에서 여러 개의 도장을 발견한데서 시작된 것과 관련있다. 

 

인간은 사라져도 흔적은 남고, 이름은 존재의 기억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에 강한 인상을 받은 작가는 도장을 단순한 인장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상징으로 바라본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도장은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 그리고 삶의 흔적을 압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 Condensation 응집 029 132x98.5cm Mixed media(Korean Stamps) on Panel 2022

 

이 작가는 한 작가노트에서 “도장은 단순히 이름을 새기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흔적이며, 인간이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본능의 형식이다”고 적고 있다. 또 다른 기록에서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나는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쌓는다. 반복 속에서 인간 군집의 기억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각각의 도장은 개인의 흔적이며, 존재의 증표이고, 사회적 관계망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다. 그 도장들은 언뜻 독립된 존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서로 연결되고 얽히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형성한다. 작가는 이를 ‘응집’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 속에서 결속하고 연결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실제 그의 작품 속 도장은 동일해 보이지만 미세하게 다른 형태와 결을 지닌 개별 존재들이 서로 부딪히고 연결되며 거대한 구조를 이룬다. 이 점은 익명의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각각의 삶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과 닮아 있다.

 

아울러 이 작가의 작업은 사회학적 메시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화면 전체를 뒤덮는 반복의 리듬은 수행적이고 명상적인 감각까지 불러온다. 수천 번의 압인 과정을 반복하는 작업은 육체적 노동인 동시에 정신적 수행이다. 도장을 하나하나 새기고 찍어내는 행위는 마치 수도 행위처럼 긴 시간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시간의 밀도가 존재한다. 단순히 완성된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지나온 반복의 시간을 함께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 Condensation 응집, 001, 74x92, Mixed media(Korean Stamps) on Panel 2026

 

이 작가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전각과 회화, 조형과 철학의 경계를 동시에 넘나든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도장은 문서나 서화의 끝에 찍히는 보조적 역할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작가는 그 도장을 화면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을 현대 추상회화의 언어로 전환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각을 단순 공예나 전통기법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도장은 하나의 사회적 기호로 변모하고, 무수한 도장들의 집적은 관계 구조를 드러내는 시각 체계로 확장된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이 작가의 작업에 대해 "회화적 평면과 조각적 입체를 넘어 판화마저 하나로 아우르는 일종의 종합적인 작업"이라며 "형식적으로는 이질적인 것들, 다른 것들, 차이 나는 것들을 단위원소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브리콜라주를 의미하고, 내용으로는 이질적인, 다른, 차이 나는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사는 세상을 의미한다"고 평했다.  

 

고 평론가는 이 작가 작업의 핵심을 '관계와 집합'에서 찾는다. 작가의 작업은 도장으로 표상되는 사람 간 관계를 말해주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에게 반영되는 인연의 망으로 얽혀 우주의 한 부분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예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빼곡한 도장들 위로 작가는 도자기, 막사발, 명상에 잠긴 부처의 두상, 박수근의 나목과 같은 모티브를 덧그려 일상의 넓이와 삶의 깊이를, 의식의 질과 양을 함축해놓고 있다고 평한다.

 

이 작가의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추상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화면은 끝없이 분열된다. 수많은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점은 동양 철학의 세계관과도 연결된다. 모든 존재는 독립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전체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유기적 사고다.

 

Condensation 응집 001 45.5x53cm Mixed media(Korean Stamps) on Panel 2024

 

이 작가는 이번 전시와 관련해 “사각 프레임 안에 인간이 역사와 전통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작품 속 도장들은 단순한 조형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의 기억이며, 문명의 흔적이고, 집단적 시간의 기록이다.

 

그의 작업은 ‘도장’이라는 매우 한국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국제적인 감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도장이 화면 전체를 뒤덮으며 형성하는 구조는 현대 도시나 디지털 네트워크, 혹은 우주 질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품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장은선갤러리 역시 한국적 조형성과 현대미술의 접점을 꾸준히 소개해온 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방향성과 맞물리며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작가는 뉴욕·런던·홍콩 등 해외 아트페어에 110회 이상 참여했고,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추사박물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그러나 그의 예술 세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의 화면 속 도장들은 이름 없는 인간들로, 각각은 작고 미약하지만, 서로 연결될 때 거대한 문명과 역사를 이룬다.

 

그래서 이관우의 작업은 반복의 미학이 아니라 연결의 미학이다. 그리고 그 응집의 힘 속에서 그는 인간 사회의 근원적 생명성을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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