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원로배우 신구와 박근형이 400년 된 고전 ‘베니스의 상인’을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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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박근형, 신구 [사진=연합뉴스] |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NOL 서경스퀘어 스콘에서 연극 ‘베니스의 상인’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오경택 연출을 비롯해 신구, 박근형, 이승주, 카이, 최수영, 원진아, 이상윤, 김슬기, 김아영, 최정헌, 박명훈, 조달환, 한세라 등이 참석했다.
‘베니스의 상인’은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가 가난한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연극이다. 앞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선보인 제작사 파크컴퍼니와 오경택 연출이 다시 의기투합해 탄생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극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돈을 기한 내로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떼어간다는 샤일록의 계약, 금·은·납 상자 중 올바른 상자를 찾은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포셔의 시험, 그리고 사랑의 증표인 반지를 그 누구에게도 빌려주거나 빼앗기지 않겠다는 포셔와 바사니오의 맹세라는 세 가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 연출은 ‘베니스의 상인’에 대해 “흔히 희극이라 말하지만, 그 속에는 비극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 현대에서는 문제극이라고 분류한다”고 말하며 이번 작품을 “희극으로 시작해 비극의 질문으로 끝나는 법정극”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오 연출은 “당시에는 샤일록의 복수심이 잔인하고 폭력적이라서 악인으로 치부되었으나, 동시대적 관점으로 봤을 때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은 샤일록의 모습은 단순한 악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돈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자비와 정의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고전을 만들어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쓰인 지 400년이 훌쩍 넘은 고전인 만큼 현대에 발맞춰 각색의 과정도 거쳤다. 오 연출이 직접 각색한 이번 작품은 원작의 구조와 흐름을 유지하되, 샤일록의 인간적인 모습과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동기를 강화했다. 이번 작품의 핵심 키워드로 ‘선택적 공정성’을 내세운 이유도 각색의 방향과 결이 같다.
오 연출은 “샤일록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우리 역시 그렇다. 모든 인간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나눌 수 없고, 어떤 상황에서 무슨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공정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연 무엇이 공정하고 옳은 것이며, 정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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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오경택 연출, 이승주, 카이, 박명훈, 한세라, 최수영, 박근형, 신구, 원진아, 김아영, 김슬기, 조달환, 최정헌, 이상윤 [사진=연합뉴스] |
‘베니스의 상인’은 캐스팅부터 화제를 모았다. 앞서 ‘고도를 기다리며’로 전 회차 전석 매진을 이뤄낸 신구와 박근형이 다시 한번 한 무대에 서게 된 것.
신구는 베니스의 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공작’ 역으로 분해 작품에 임한다. 이날 후배들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한 그는 건강에 대한 우려와 작품 참여 계기를 묻는 말에 “제가 하고 싶고 보람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라 답했다.
신구는 “나이가 들다 보니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걷는 것이 좀 부실해서 걷는 운동도 하고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며, “이번 역은 움직이는 동선이 크지 않다. 좋아하는 극단이고 제작사이고, 제가 할 일이라 생각해서 선뜻 선택했다. 아직 남아있는 힘이 있으니까 그걸 동력으로 삼고자 한다”고 의지를 전했다.
박근형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역을 원 캐스트로 소화한다. 그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시절 당시 이 역할을 연기해 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극작가 이근삼에게서 ‘큰 수확’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무려 67년 만에 같은 역을 연기하게 된 박근형은 “젊었을 때는 샤일록을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게 표현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진정한 예술가로서 샤일록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며, “그때보다는 확실히 완성도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께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라스트 세션’,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제작사 파크컴퍼니와 인연을 이어온 카이는 베니스의 상인이자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건 ‘안토니오’ 역에 분했다. 대작 뮤지컬의 주연을 도맡고 있는 그는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며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이에 카이는 “뮤지컬과 연극은 형식적으로 다르지만, 배우가 관객들과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라는 기본적인 요소가 저를 연극 무대로 이끄는 가장 큰 요소다. 이번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언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부분을 느끼고 표출하는 데 노력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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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연합뉴스 |
이상윤은 “이전에 근형 선생님이 한 팀으로 구성해서 공연을 했을 때 어떤 장점들이 생기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이후 ‘세일즈맨의 죽음’ 지방 공연에서 한 달간 원 캐스트로 공연하게 됐었는데 엄청난 호흡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때 언젠가 단독 캐스트로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작품을 하게 되었을 때 근형 선생님이 혼자서 샤일록 역을 하신다는 말을 듣고 저도 혼자 하고 싶다는 욕심을 냈다”며, “지금까지 2주 정도 연습했는데 아주 좋다. 남들은 한 번씩 연습할 때 저는 두 번씩 해볼 수 있으니까 거기서 생기는 경험도 좋고, 각 배우들과 다른 느낌으로 맞춰보는 것도 즐겁다. 상대 배우들과 호흡하며 생기는 세밀한 디테일들을 더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고전 작품에서 보기 드물게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배역에 관한 관심도 이어졌다. 지혜와 재치로 작품의 흐름을 이끄는 ‘포셔’ 역에는 원진아, 최수영이 분해 활약할 예정이다.
원진아는 “시대가 바뀌었지만, 그 변화 과정에서도 과거의 파편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의 역할은 미래를 지향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를 보여주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며, “연출님이 지금의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각색하셨지만, 작품 자체가 고전이다 보니 특정한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당시 시대상으로는 저럴 수 있었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고, 여성으로서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변해왔고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수영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라 제안이 왔을 때 매우 반가웠다”며, “포셔라는 멋지고 지혜로운 인물에게 어떻게 저만의 매력을 더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원작을 처음 봤을 때는 포셔가 우아하게 느껴졌는데 파고들수록 재치가 넘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 조금 더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개성을 살리려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베니스의 상인’의 ‘안토니오’ 역에 앞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주연을 맡았던 이승주는 고전의 의미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승주는 “무대 위 이야기로 인해 무대 밖에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갈 수 있게끔 하는 작품이 좋은 연극이라 생각한다. 저한테는 이 희곡이 그랬다. 극 중 여러 질문이 결국 관객들이 많은 질문들을 가져갈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며, “‘햄릿’을 공연할 때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많은 연령층이 보러 와주셨다. 그게 셰익스피어 고전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연극 역시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근형은 또 다른 측면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최근 3~4년간 꾸준히 고전 작품을 올리는 이유에 관해 그는 “불행하게도 창작극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형은 “문학계에서는 노벨 문학상 소식도 들리는데, 연극 분야에서는 희곡을 일으켜 세우려는 움직임은 너무 없다”며, “어떻게 하면 좋은 연극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정통극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형님과 함께 4년 가까이 계속 무대에 섰다. 앞으로도 계속 정통극을 할 것이지만, 제일 바라는 것은 우리의 좋은 창작 희곡”이라고 강조했다.
신구와 박근형의 연극에 가진 애정은 ‘연극 내일 프로젝트’로 실현되고 있다. 앞서 이들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이뤄낸 공연 수익을 기부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청년·신진 연극인을 위한 맞춤형 커리큘럼을 진행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연극 내일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 배우들이 앙상블로 출연해 거장들과 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박근형은 청년 배우들을 보며 연극을 처음 시작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에 입문했는데 책도 선생님도 없어서 훈련도 받지 못했다. 10명이 영화 엑스트라로 일해서 번 돈을 가지고 연극 단체를 만들어 공연 하면서 선생님의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년 연극인들한테 학교보다는 좀 더 빠른 길로 갈 수 있는 교육 기관이 없겠나 싶어서 시작한 게 연극 내일 프로젝트다.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이 프로젝트를 후원할 것이고 잘 이끌어져 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베니스의 상인’은 오는 7월8일~8월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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