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재훈 기자]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전 종목 석권을 노렸던 한국 양궁이 기대와는 사뭇 다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사람의 힘으로만 시위를 당기는 종목인 리커브와 도르래와 조준경을 더해 더욱 정확성을 높인 컴파운드에 남녀 개인전과 남녀 단체전, 혼성 단체전까지 각 5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었고, 한국은 8개 이상 금메달을 모두 따낸다는 목표를 설정했었다.
하지만 한국 양궁이 이번 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3개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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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리커브 양궁 2관왕 이우석(사진: 대한양궁협회) |
이우석이 리커브 남자 개인전과 단체전, 김종호가 컴파운드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남자 양궁은 그런대로 제 몫을 했지만 오랜 기간 세계 최강을 자부했던 여자 양궁은 다소 부진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은 ‘주적’은 컴파운드 양궁에서 세계 최강으로 떠올랐고, 리커브 양궁에서도 한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된 인도.
한국은 여자 리커브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인도에 3-5로 지면서 아시안게임 8연패를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개인전으로 이어졌다.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강채영은 이번 대회에서 개인, 단체전, 혼성 단체전까지 3관왕에 도전했지만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하고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강채영은 개인전 8강 탈락 직후 인터뷰에서 “어제(단체전) 금메달을 따지 못한 충격이 솔직히 있었다"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털어내려 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국제무대에서 풍부한 경험을 축적한 베테랑인 강채영에게도 단체전 패배의 충격은 좀처럼 극복하기 힘든 일대 사건이었던 셈이다.
인도 양궁은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 양궁이 만나왔던 수 많은 적수 가운데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강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도의 양궁 등록 선수는 한국의 4배가 넘는 1만명에 달하고 군과 철도청, 주 정부, 공기업은 한국의 실업팀처럼 스포츠 특기자 채용으로 양궁 선수들을 채용, 선수와 선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여기에 2018년부터 인도양궁협회를 후원해 온 인도의 국영 전력회사 NTPC는 2023년부터 5년간 11억5천만루피(약 162억원)를 지원하고 있다.
선수들의 경쟁 시스템도 빈틈이 없다. 인도양궁협회에 따르면 인도의 선수 체계는 취미로 활을 쏘는 동호인부터 엘리트 선수까지 10단계로 나뉘고, 전국 4개 권역 거점센터가 등급을 관리한다. 여기에 세계 최초의 프로 양궁 리그인 아처리 프리미어리그(APL)도 출범시켰다.
한국 양궁이 지난 50여 년간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비결을 모두 벤치마킹했고, 벤치마킹의 수준도 그냥 따라하는 수준이 아닌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놓은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양궁은 이대로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일까.
사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기록한 점수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국 양궁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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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여자 리커브 양궁 대표팀의 단체전 경기 장면(사진: 대한양궁협회) |
여자 리커브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아쉽게 놓친 오예진의 예선 점수는 678점으로 전체 1위였다. 그가 32강전부터 결승까지 기록한 평균 점수(29.22점)는 금메달을 차지한 인도 선수보다 0.82점 높았다.
여자 컴파운드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최연소 국가대표 강연서가 32강전부터 결승까지 기록한 평균 점수(146.5점) 역시 금메달을 따낸 인도네시아 선수보다 1점 이상 높았다.
아시안게임 8연패에 실패한 여자 리커브 단체전(은)과 컴파운드 혼성 단체전(은) 역시 기록 순위만 놓고 보면 전체 1위였다.
또한 종목별 아시아 기록과 아시안게임 기록 보유자는 여전히 대부분 한국의 선수들이다.
비록 이번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패했지만, 대회 준비와 내용적 측면에서는 한국 양궁이 경쟁국에 확실한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대회 메달 색깔이 점수가 아닌 1대1 토너먼트 맞대결 결과로 정해지는 것이 현재 양궁의 ‘게임의 법칙’일 뿐 기량 면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정상에 있는 한국 양궁임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양궁이 지금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탈환하기 위한 변화를 요구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돌이켜 보면 한국 양궁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 그리고 극복의 역사라고 할 만큼 수 많은 도전에 맞서 강력한 응전으로 결국에는 도전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켜온 역사를 자랑한다.
양궁은 1980년대부터 세계 양궁 무대를 정복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차례 경기 방식이 바뀌었지만 그 때마다 한국 양궁은 솔루션을 찾아냈고,결국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 배경에는 세계 양궁계가 부러워 하는 한국 양궁만의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는 오랜 기간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은 물론 공정성과 신뢰성 면에서 이견이 없는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 시스템과 선발된 국가대표 선수를 세계 최강의 선수로 키워내는 훈련 체계를 구축, 흔들림 없이 이어왔다.
가혹할 만큼의 경쟁을 이겨내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는 선수들은 지난 수 십년의 노하우가 쌓인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톱 클래스의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대표팀 선수끼리는 국제 무대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집안싸움’을 펼쳐왔다.
올림픽에서 여러 개의 메달을 따낸 스타 선수가 당장 이듬해에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하는 일이 유독 양궁에서 당연하고 비일비재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 대회 기간 중 선수들이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한 최상의 지원 체계를 가동하는 것도 외국 팀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역대 최악의 대회 운영이었다는 혹평을 받고 있는 이번 아시안게임 기간중 양궁 대표팀이 별다른 잡음이나 어이 없는 헤프닝 없이 경기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지원이 있었기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 체류 기간 불편함 없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오카자키 양궁 경기장에서 20여분 거리에 위치한 호텔을 확보, 양궁 선수단만을 위한 전용 숙소를 마련하는 한편, 경기장 인근 카페를 선수단 전용 휴게 공간으로 조성하고 상시 휴게용 트레일러도 설치해 경기 공백 시간에 선수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앞서 오카자키 중앙종합공원 다목적 광장의 특징과 바람 방향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진천선수촌에 오카자키 경기장을 그대로 재현하는 등 세심한 훈련 지원과 함께 오카자키에서 전지훈련에서는 일본의 기온, 풍속 등 기후 조건을 세밀하게 점검하고 숙소와 훈련장, 경기장 이동 동선 등도 사전에 경험하도록 해 대회 적응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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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현장에서 대표팀 선수들을 격려하는 정의선 대한양궁협회 회장(사진: 연합뉴스) |
양궁계는 이번 아시안게임 한 번의 성과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경쟁력 높은 시스템의 운영과 지원으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번 아시안게임 기간중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 최강으로 떠오른 인도 컴파운드 양궁을 언급하며 "우리도 열심히 쫓아가고 있는데 더 많이 좀 훌륭한 방법으로 훈련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회가 앞으로 더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한국 양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고 응전겠다는, 그리고 결국에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오랜 기간 반복된 도전과 응전의 역사 속에 승리를 거듭해 온 한국 양궁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응전으로 승리의 길을 모색할 지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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