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1만 명의 힘으로 되살린 4·3의 기억…염혜란 주연 ‘내 이름은’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6-04-03 06:30:01
  • -
  • +
  • 인쇄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1만 명의 시민이 4억 원을 모아 탄생시킨 제주 4·3 영화 ‘내 이름은’이 개봉을 앞둔 가운데 정지영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소재의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내 이름은’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정지영 감독을 비롯해 염혜란, 신우빈, 최준우, 박지빈이 참석했다.

 

▲ (왼쪽부터) 박지빈, 정지영 감독, 염혜란, 신우빈, 최준우 [사진=연합뉴스]


‘내 이름은’은 촌스러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싶은 18세 소년 ‘영옥’과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는 어머니 ‘정순’의 궤적을 그린 영화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품은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다.

이번 작품은 ‘남부군’, ‘하얀 전쟁’, ‘부러진 화살’ 등을 선보인 정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정 감독은 제작 계기를 밝히며 “4·3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이 사건을 다루려 하다보면 남북 문제나 이데올로기 문제를 언급해야하는데 그건 이미 ‘남부군’, ‘남영동1985’에서 했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는 건 피하자는 생각에서 안 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감독은 “이 영화를 공동제작한 대표가 4·3 평화재단에서 당선된 시나리오를 가져왔다. 읽어본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름을 찾아가는 아이디어가 좋다고 했더니 이 소재를 갖고 제 마음대로 고쳐서 영화를 해보면 어떻겠느냐 했다. 고민을 하다가 이 아이디어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2년 동안 고쳤다”고 이야기했다.

1998년과 1949년, 그리고 현재까지 총 3개의 타임라인을 오가며 전개되는 작품은 관객들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주인공 정순과 함께 제주의 아픈 역사를 마주하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야기에 대해 정 감독은 “4·3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건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이유를 밝혔다.

정 감독은 “금기에서 풀린 지 꽤 됐는데도 아직 많은 국민들이 4·3에 대해 몰라서 4·3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방법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며, “현재로부터 시작해 4·3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던 1998년을 주 무대로 하고,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4·3이 어떤 것인지 찾아가 보면 영화를 본 관객들은 4·3에 대해 궁금해하고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사진=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1949년 제주를 향해 자행된 국가폭력은 영옥이 겪는 학교폭력으로 비유되어 보여지기도 한다. 이에 정 감독은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대체로 여러 개의 공동체에 외국인이 들어와서 질서를 다시 잡으려할 때 갈등이 시작되고, 나중에는 집단 폭력화된다. 그것은 비단 국가폭력 뿐만이 아니고 일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 폭력 역시 같다고 파악해서 구조를 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지막 폭력이 제가 생각해도 끔찍한데, 그 끔찍한 폭력을 추적해서 느닷없이 보여주는 건 관객들한테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 같아서 학교 폭력으로 완화시켰다. 그때의 폭력이 1998년도까지 세습화된 모습을 통해 연결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4·3이라는 폭력의 역사를 그린 만큼, 극 중에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베트남 전쟁과 같이 한국 현대사에 깊은 흉터를 남긴 사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관련해 정 감독은 “정순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폭력의 역사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베트남 전쟁, 제주 4·3 모두 우리들의 얼굴이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주인공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맛보게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배우가 이걸 의식하고 연결하면 안 돼서 주인공에게는 일부러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제주 4·3 사건 관련 발언과 맞물린 개봉 시기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이 대통령은 제주를 찾아 4·3사건을 ‘최악의 국가폭력’이라 말하고, 국가폭력 범죄의 민·형사상 시효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정 감독은 “이 영화는 이재명 대통령 집권 이전에 만들기 시작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영화를 4월 3일에 개봉하려고 했는데 극장의 사정에 따라야 해서 안타깝게도 15일에 개봉하게 됐고, 그래서 타이밍이 맞게 됐다. 4월은 국가폭력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고, 그런 측면에서 개봉 시기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주가 품은 아픈 역사를 말하고 있는 영화이지만, 드넓게 펼쳐진 보리밭과 파도가 부서지는 주상절리, 푸른 바다의 빛깔과 같은 아름다운 풍광 역시 함께 담겼다. 하지만 정 감독은 “사실은 좀 안타깝다. 제주도를 더 아름답게 그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정 감독은 “제주도를 상당히 많이 다녔는데, 아름다움 속에 아픔이 있다. 4·3 뿐만이 아니다. 제주의 역사는 곧 아픔의 역사다.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많은 자연을 담고 싶었지만,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있어서 충분히 담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진=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영화를 관통하는 서사를 지닌 주인공 ‘정순’ 역은 염혜란이 맡았다. 그는 정 감독의 전작 ‘소년들’을 통해 정 감독과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정 감독은 “‘소년들’ 때 촬영은 몇 번 하지 않았는데 반했다”며 둘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이어 정 감독은 “연기가 맛깔나고 리얼해서 더 큰 역할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준비하고 있을 때 염혜란 배우가 다음 작품도 같이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볼 것도 없이 주인공으로 정하고 시나리오를 고쳤다. 젊은데 나이 먹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미안하지만, 써놓고 보여주면 주인공의 매력 때문에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염혜란은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 ‘광례’에 이어 다시 한번 제주도민을 연기하게 됐다. 그는 “광례에 비교하면 정순이 명이 길었다”면서, “한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온 강인한 어머니라는 지점에서는 비슷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염혜란은 ‘내 이름은’이라는 작품과 주인공 정순이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문학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가장 크게는 이 이야기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아서 좋았다. 과거의 4·3 사건만 다루고 있지 않고, 올해로 78주기인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질문하는 지점이 매력적이었다”며, “정순의 캐릭터도 평면적이거나 전형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한 인물이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1998년의 시점에서 젊은 세대들을 연기한 신예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데뷔 첫 영화에서 ‘영옥’ 역을 맡아 염혜란과 모자로 호흡을 맞춘 신우빈은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4·3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영상 자료들을 찾아봤다. 영화에 나오는 정순의 집이 실제로 4·3을 직접 겪으신 분의 집이다. 촬영하다 보니 저도 뭔가 더 조심스러워지더라. 아직도 4·3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싶어서 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영옥의 친구이자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모범생 ‘민수’ 역을 맡은 최준우는 “중학교 3학년 쯤 4·3에 대해 한 번 들었던 게 기억난다. 솔직히 그 때는 학생이라서 역사 점수가 중요했기 때문에 깊게 파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외우자는 생각이었고, 죄송하지만 내용을 다 알지는 못했다”며, “근데 이 작품에 임하면서 제가 역할을 맡은 이상 배우로서 책임감을 갖고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책, 다큐, 영화를 찾아봤다. 공부하면서 영화에 임했다”고 전했다.

아역 배우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박지빈은 교실 내 권력 생태계를 파괴하는 전학생 ‘경태’ 역으로 분했다. 그는 “경태라는 역할은 그때도 지금도 충분히 존재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면서, “영화를 통해 경태가 영옥에게 주는 메시지에 집중했다. 영화의 시작을 함께하면서 저도 잘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조심스럽지만 경태라는 역할이 왜곡되지 않게 잘 표현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감독은 “ 아픈 이야기이지만 많은 사람이 봐야한다”며, “이런 영화를 만들려면 요즘 시세로 6~70억이 들어야 하는데 연기자와 스태프들, 심지어 저까지 희생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수많은 사람들 덕에 이 영화가 탄생했다. 어떤 특정한 투자자 없이 텀블벅을 통해 1만 명의 사람들이 4억 원을 모아줬고, 그것을 시드머니로 해서 도움도 받고 지원도 받아서 만들어졌다”며, “좀 더 잘 찍어야 하는데 제작비가 부족해서 날짜에 한계가 있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내 이름은’은 오는 15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저작권자ⓒ SW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 [쇼츠인터뷰] '7언더파 약진' 성유진,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우승 경쟁 합류 "기대해 주세요"

    [쇼츠인터뷰] '7언더파 약진' 성유진,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우승 경쟁 합류 "기대해 주세요"

    [쇼츠뉴스] 유서연, 31개월 만의 톱10… KLPGA투어 덕신EPC 챔피언십 톱10 브리핑

    [쇼츠뉴스] 유서연, 31개월 만의 톱10… KLPGA투어 덕신EPC 챔피언십 톱10 브리핑

  • [쇼츠인터뷰] '깜짝 우승 경쟁' 유서연 "좋아진 몸 덕분이죠"

    [쇼츠인터뷰] '깜짝 우승 경쟁' 유서연 "좋아진 몸 덕분이죠"

    [쇼츠뉴스] 현역 최강 여자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바움가드너 할머니는 한국인

    [쇼츠뉴스] 현역 최강 여자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바움가드너 할머니는 한국인

  • [맛보기] KLPGA 안지현 프로의 6번 아이언 꿀팁 '힘 빼고 헤드 무게를 느끼면서~'

    [맛보기] KLPGA 안지현 프로의 6번 아이언 꿀팁 '힘 빼고 헤드 무게를 느끼면서~'

    [KLPGA] 신다인 프로의 4번 아이언 꿀팁 '탑에서 한 템포 쉬는 느낌으로'

    [KLPGA] 신다인 프로의 4번 아이언 꿀팁 '탑에서 한 템포 쉬는 느낌으로'

  • CODE-S II or 하이브리드 당신의 선택은?

    CODE-S II or 하이브리드 당신의 선택은?

    "헉!  두 배 차이가 난다고?" 당신이 몰랐던 골프 스코어의 비밀... 초중심 골프공 성능 테스트

    "헉! 두 배 차이가 난다고?" 당신이 몰랐던 골프 스코어의 비밀... 초중심 골프공 성능 테스트

  • KLPGA 이승연 프로의 바이킹처럼 탑에서 잠깐 멈추기! 유틸리티 꿀팁! #스윙레슨 #shorts  #golf

    KLPGA 이승연 프로의 바이킹처럼 탑에서 잠깐 멈추기! 유틸리티 꿀팁! #스윙레슨 #shorts #golf

    이솔라 프로가 알려주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만드는 '지면 반력' #GOLF

    이솔라 프로가 알려주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만드는 '지면 반력' #GOLF

  • [쇼츠영상뉴스] 中 왕신유, '프랑스오픈 챔프' 가우프 제압 '파란'

    [쇼츠영상뉴스] 中 왕신유, '프랑스오픈 챔프' 가우프 제압 '파란'

    [맛보기] KLPGA 김나영 프로의 드라이버 멀~리 보내는 방법은?!

    [맛보기] KLPGA 김나영 프로의 드라이버 멀~리 보내는 방법은?!

  • 현은지 프로에게 골프란 무엇인지 묻다

    현은지 프로에게 골프란 무엇인지 묻다

    '한국여자오픈 제패' KLPGA 이동은 프로의 장타 비결은 하체

    '한국여자오픈 제패' KLPGA 이동은 프로의 장타 비결은 하체

  • GTOUR 프로가 알려주는 스크린 골프 잘 치는 법!

    GTOUR 프로가 알려주는 스크린 골프 잘 치는 법!

    [쇼츠인터뷰] 노승희, 한국여자오픈 2연패 도전 출사표

    [쇼츠인터뷰] 노승희, 한국여자오픈 2연패 도전 출사표

  • [쇼츠인터뷰] '빨간 리본 소녀' 리슈잉, 한국여자오픈 출사표

    [쇼츠인터뷰] '빨간 리본 소녀' 리슈잉, 한국여자오픈 출사표

    [쇼츠인터뷰] '신인상 포인트 선두' 김시현, 한국여자오픈 출사표

    [쇼츠인터뷰] '신인상 포인트 선두' 김시현, 한국여자오픈 출사표

KLPGA 라이브

인터뷰

WTA 인사이드

리뷰 & 쇼케이스

내 골프백을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