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니 앤 클라이드’ 홍금비, 파멸로 내달리는 두 연인의 이기적 로맨스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6-02-12 17: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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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두 사람이 불쌍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우린 더 사랑해야 하고 더 미쳐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홍금비는 최근 서울 대학로 소재의 모 카페에서 SWTV와 만나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홍금비는 길게 늘어뜨린 금발로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작 ‘웨이스티드’부터 머리를 염색해 이미지 변신을 거친 그는 “제 버킷리스트였다. 금발 중에서도 긴 금발을 너무 해보고 싶었다”면서, “다들 좋아해 주시고 반응이 너무 좋아서 다행이었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 사진=쇼노트


작품과 잘 맞아떨어지는 분위기로 개막에 앞서 공개된 프로필부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제 무대도 가발이 아닌, 본인 머리로 소화할 줄 알았다는 말에 그는 손뼉을 치면서 “저도 그랬다”고 동감했다.

“연출님부터 문정 감독님, 같이 하는 모든 분이 저보고 ‘이 머리 하니까 그냥 보니인데?’라고 말해주셨어요. 연습실에서도 머리발을 많이 받았었죠. (웃음) 아쉽게도 보니가 퀵 체인지가 10초마다 있어서 제 머리를 포기하고 가발을 쓰게 됐어요.”

‘보니 앤 클라이드’는 자유를 갈망한 ‘보니’와 ‘클라이드’가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차량 절도와 강도를 거듭하며 세상을 뒤흔든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이다. 2011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된 작품은 국내에서 2013년, 2014년 공연된 이후 약 11년 만에 개막 소식을 전했다.

이전에 뮤지컬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보니의 대표 넘버 ‘춤출까요’(How 'bout a Dance)를 많이 불러 노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는 그는 자신이 이 넘버를 부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곡 자체가 저랑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끼가 많고 되게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이 노래를 잘 불렀던 기억 때문에 제가 감히 부를 생각을 못 했죠. 저는 ‘위키드’로 치면 엘파바처럼 파워풀한 노래만 잘할 줄 알았어요. 근데 나이를 먹으면서 다양한 곡을 더 많이 접하게 되고, 안 어울리는 곡도 좋아하게 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글린다 같은 노래도 궁금해지더라고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에 실존한 범죄자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는 수많은 창작물에서 재해석, 인용되며 오늘날 치명적인 로맨스를 그리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작품의 주인공들이 실존 인물인 것조차 몰랐다고 전한 홍금비는 5년 전쯤 알고리즘으로 보게 된 공포 실화 요약 유튜브의 주인공이 보니와 클라이드였다며 이들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때는 ‘와, 답 없다’하고 봤어요. (웃음) 나쁜 놈들이라 생각했죠. 제가 맡을 배역일지 모르고 본 거라서 남의 얘기라 생각하면서 정말 안 좋게 봤어요. 어떻게 이런 사고방식일 수 있을까, 이게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의 끝일까 싶었죠. 저런 범죄자들을 옹호하는 시민들도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생각했어요.” 

 

▲ 사진=쇼노트


작품이 실존하는 범죄자를 소재로 한 만큼 걱정이 앞섰지만, 대본을 봤을 때는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고한다. “너무 대박 나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였다”고 말한 그는 “파멸하는 그들이 정말 이해가 안 됐는데, 작품에서 인물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사실에 기반해서 알려주다 보니 캐릭터들의 색깔이 좀 더 명확해져서 매력 있게 다가왔다”고 이야기했다.

극 중 홍금비가 맡은 역할은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는 웨이트리스 ‘보니’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좇으려 클라이드와 함께 떠나게 된다. 이 인물에 대해 대본을 읽자마자 이해가 됐다고 말한 그는 보니의 자아가 만들어진 시작점을 설명하며 “주체적인 기질도 있지만, 어린 시절 환경이 보니라는 인물을 좀 더 명확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니는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버터밀크 팬케이크를 만들어준 친밀한 아빠가 ‘넌 정말 반짝이고 스타가 될 사람이야’라고 말해줬기 때문에 보니 역시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죠. 또 클라라 보우 같은 스타가 되지 않으면 결국 엄마와 그 주위에 있는 여자들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깨달은 점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적인 배우 클라라 보우와 같은 삶을 동경하는 보니의 모습은 재즈 시대의 보드빌 스타를 꿈꾸는 ‘시카고’의 록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에 홍금비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영화 속 반짝이는 옷을 입고 허황된 꿈을 꾸는 록시를 많이 상상했었다”고 언급했다.

“영화 ‘시카고’ 속 르네 젤위거의 록시에게 한창 빠져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녀 때문에 밤을 새울 정도로요. 사랑스럽지만 바보 같으면서 영악한 면모를 너무 사랑했고, 이런 역할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는 제가 감히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았죠. 내가 과연 비슷한 느낌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에 보니를 만나자마자 록시의 한 장면이 생각나면서 ‘이거다’ 싶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무대를 꿈꾼 홍금비 역시 보니와 공통 분모가 있다. 이에 그는 처음 드레스 런을 했을 당시 자신의 안에 있는 보니를 꺼내 도움을 받은 일화를 풀어놓았다.

“보니의 첫 넘버가 ‘어쩜 좋니 누가 봐도 스타야’ 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처음 드레스 런을 했을 때 녹음한 걸 들어보니까 전혀 즐기지 않는 사람 같은거예요. 그때 문득 저도 보니와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니가 가진 ‘나를 봐, 나는 최고의 스타가 될 거야’라는 마음이 당연히 나한테도 있을 테니까 제 속에 있는 이런 면모를 잘 녹여서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배우로서도 보니에게 많이 배웠다고 전한 그는 이번 작품을 소화하며 “‘날 좀 보소’같은 태도를 가져도 좋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실수했을 때 부끄럽고 죄송해서 다시 무대로 못 나갈 것 같았는데, 이제는 백스테이지로 들어가자마자 사과하면서도 만회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더 보여주고 싶어요. 요즘 성격이 더 보니랑 닮아가는 것 같아서 첫 곡부터 기분 좋게 하고 있어요.”

 

▲ 사진=쇼노트

 

이외에도 보니와 홍금비는 시라는 교집합으로 묶이기도 했다. 실존 인물 보니 파커가 시를 쓰는 것을 즐긴 만큼 작품 내에서도 보니가 자작 시를 읊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역시 심적으로 불안했을 때 시집을 많이 찾았다고 밝혔다.

홍금비는 “짧지만 모든 감정을 축약할 수 있는 글을 좋아해서 일기를 많이 쓰기도 하고, 문득 글귀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항상 썼었다”며, “‘웨이스티드’를 하면서 우연히 제가 썼던 시가 쭉 적혀져 있는 메모를 발견하고 다 삭제했다”며 웃어보였다.

극 중 등장하는 보니의 시는 한국 공연의 제작진이 새로 쓴 결과물이다. 홍금비는 “저도 이 멋들어진 글에 깜빡 속을 뻔했다”면서, “읽을수록 보니를 너무 잘 간파하고 계시다는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보니의 시 중에서 ‘폐 속 깊이 가뭄이 난다’는 구절을 좋아해요. 항상 보니는 먼지가 가득한 본인의 마을,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갈망이 언제나 마음 깊이 있었다는 게 잘 투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죠. 그리고 항상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보니에게는 팍팍한 가뭄이었다는 게 잘 느껴졌어요.”

‘미친 사랑’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클라이드와의 로맨스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 홍금비는 보니가 첫눈에 사랑하게 된 클라이드를 “소울메이트이자 자기 자신”이라 칭하고 영화 ‘아가씨’의 명대사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를 인용해 둘의 관계를 표현했다.

“뇌는 너무 사랑하고 가까워졌다고 느끼면, 자기 자신이랑 같은 부류라고 인지를 한대요. 그래서 보니와 클라이드도 서로에게 본인을 투영했을 것 같아요. 극 후반부에 상대를 막 대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함께하다 보니까 나를 막대한 만큼 상대도 막대하게 되고, 사랑하는 만큼 더 함부로 말하게 되면서 실수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홍금비와 로맨스 호흡을 맞추는 클라이드 역의 배우로는 조형균, 윤현민, 배나라가 이름을 올렸다. 홍금비는 “오빠들마다 차이가 극명해서 아찔한 만큼 재밌다”면서, “매 공연 만나는 사람이 너무 다르다보니 제 캐릭터가 멈춰있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보니가 더 많이 사랑하는 캐릭터 중 하나가 되었다”고 말했다.

“형균 오빠는 너무 든든한 클라이드예요. 같이 범죄를 저지르면 괜찮을 것 같고, 계획이 있어서 알아서 해줄 것만 같아요. 안심이 되니까 더 제가 막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현민 오빠는 스윗한 줄 알았는데 사고를 계속 치고 다니는 클라이드예요. 갑자기 돌아버려서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고 오니까 저를 더 불안하고 날카로워지게 만들어서 챙겨야 하는 클라이드죠. 또 나라 오빠는 저 자신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서로 더 잘난 척 ‘너 이거 할 수 있어?’하고 물어보면서 무례하게 총을 겨누고, 더 과시하려는 태도가 나와요.”
 

▲ 사진=쇼노트

이처럼 매력적인 커플은 작품의 재미를 끌어올리지만, 실제 1930년대 미국에서 13명을 죽인 살인자인 만큼 범죄 미화를 지적하는 시선도 함께 따라오기도 했다. 홍금비는 이에 관해 대본 리딩을 한 후 연출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작품을 만들어 나간 방향성에 대해 전했다.

“두 사람이 불쌍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우린 더 사랑해야 하고 더 미쳐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관객분들이 처음에는 이 둘을 귀엽게 보다가도, 나중에 가서는 ‘왜 이래?’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이 작품이 이해될 것 같았죠. 사회의 악이면서 ‘우린 사랑할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커플이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세상이라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걸 많이 얘기했어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받으면 안 되는 속성을 지녔다는 점도 우려를 모으기도 했다. 홍금비는 “우리는 박수 받으면 안 되는 위험한 인물들인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첫 리딩 때부터 연출님과 배우들이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하며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을 설명했다.

“제일 중점으로 둬야 했던 건 관객분들에게 이들을 이해시키려 인물들의 서사를 슬프게 만들지 않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사실적이면서 담백하게 보여주려고 했죠.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은 보여주되, 인물들에 대해서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말자는 약속을 했어요.”

2016년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로 데뷔한 홍금비는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는 “벌써 10년이나 지날 수가 있구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면서 뮤지컬배우로서 무대에 서온 나날을 돌아보았다.

“저는 보니와 비슷하게 어렸을 때부터 뭣도 모르고 ‘난 스타가 될 거야’라는 말만 많이 했었어요. 허황된 꿈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무대에 서는 걸 항상 꿈꿨는데, 그중에서도 뮤지컬은 제가 할 수 있는 망상 중에서 제일 1등급 망상이었죠. 근데 뮤지컬배우로서 10주년을 맞이했다는 건 멀티버스에 있는 금비 중에서 최상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삶에서 3시간 동안 ‘재미있었다’라는 기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 같다고 말한 그는 “많은 분들의 3시간이 즐거울 수 있도록 책임질 수 있다면, 오늘 제 무릎이 찢어져도 좋다는 생각”이라면서, “앞으로도 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즐거운 작품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면서도 자신감이 있고, 보러 오신 분들도 나갈 때 너무 기쁜 얼굴로 나가주시니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도망치고 싶은 현실에서 부족한 도파민 저희가 채워드릴 수 있고, 이 추운 겨울 뜨겁게 마무리해 드릴 테니까 많이 보러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보니 앤 클라이드’ 작품은 사랑하시되 보니와 클라이드는 사랑하지 마시고(웃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편 ‘보니 앤 클라이드’는 오는 3월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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