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노이슬 기자] *해당 인터뷰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삶의 방식은 다르다. 하지만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우리는 ‘편견’으로 둔다. 이런 편견을 향한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윤가은 감독이 큰 용기를 냈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그 결과, 많은 배우들과 선후배 감독 등에 응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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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영화 ‘세계의 주인’ 감독 윤가은 [사진=(주)바른손이앤에이] |
윤가은 감독의 6년만 신작 ’세계의 주인’은 인싸와 관종 사이, 속을 알 수 없는 열여덟 여고생 ‘주인’(서수빈)이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한 뒤 의문의 쪽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는 누적 만 5천명을 돌파하며 입소문의 힘을 증명하고 있다.
감독은 10대 여자 아이들의 몸을 부딪히면서 경험하는 성과 사랑이나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품어왔다. 6년동안 공들였지만 누구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이기에, 판타지성을 걷어내고 진짜를 담기를 원했다. “주제를 붙들고 고민하고 연구하면 할수록 너무나 흔한, 일상 종류의 폭력이다. 이건 이렇게 흔하고 평범한 일상적인 일인데 아직도 우리가 이 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나 질문이 크게 자리 잡았다. 저도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어온 경험도 있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가 두려웠다. 3, 4년 정도를 다양한 형태로 쓰고 엎고를 반복했다. 초반에는 장르적인 접근을 했다면, 그 시간동안 해체되는 과정이 있었다. 지금까지 하지 않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지? 고통의 무게를 각자의 방식으로 짊어지고 사시는 분들도 너무 많이 계신다. 감당이 안되는 순간도 너무 많이 찾아와서 놨다 잡았다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판타지성을 걷어내고 진짜 같은 경험을 찾는게 중요했다. 그렇다보니 풋풋한 연애 스토리가 아니라 실제 경험할 수 있는 불안하고 위험한 공포스러운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 자체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경험했는데 그 안에 모두 뒤섞인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세계의 주인’은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플랫폼 부문 공식 초청, 제9회 핑야오국제영화제 2관왕,제41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작품이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세계의 주인’을 향해 “올해 최고의 영화”, “전 국민이 봐야 하는 영화”라는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아무 정보 없이 봐야 하는 영화”라는 리뷰로 자발적인 스포 자제 챌린지를 하고, 봉준호, 연상호, 변영주 감독, 김은희 작가, 배우 김태리, 김의성, 배성우, 류현경, 고아성, 박정민, 김혜수, 개그우먼 송은이 등이 릴레리 응원 상영회를 하는 등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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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 [사진=(주)바른손이앤에이] |
윤가은 감독은 “이것은 분명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가장 큰 줄기였다.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이 시절을 보내는, 그 시절에만 겪을 수 있는 감정에 집중한 이야기다. 감독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그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은 제가 느끼기엔 이런 소재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에서 많이 안 다뤄서 그것이 수면 아래에 있던 것이 밖으로 꺼낸 것에 대한 반가움에 대한 표현인 것 같다”고 했다.
극의 중심이 되는 인싸와 관종 사이, 속을 알 수 없는 열여덟 여고생 ‘주인’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윤 감독은 주인이의 음과 양을 담아내는 것에도 고민을 거듭했다. “모든 피해자를 대표할 수 없고, 그분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 고통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지만 생존자 안에 가진 또 다른 얼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면으로든 해결됐지만 삶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것들을 꺼내 놓는 게 중요했다. 주인이의 음과 양을 담아야 하는데 음에 대해서는 잘못 다루고 있으면 어쩌나 고민을 많이 했다. ‘유진과 유진’이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느낌이었다.”
‘세계의 주인’은 감독의 전작 ‘우리집’ ‘우리들’과는 또 다른 결의 영화다. “저는 1인칭 영화를 만들어와서 3인칭이 되는 것이 어려웠다. 이번 영화는 그런 영화가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중심 인물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반응이 중요했다. 주인이를 잃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균형있게 가져가는게 저한테는 어려운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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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 [사진=(주)바른손이앤에이] |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바뀌지 않은 하나는 ‘진짜’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반응이 있고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해가 충분히 가능 하지만 처음보는 것 같은, 아주 낯선 진짜인 것을 발견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제가 시나리오에 못 담아낼 수 있다는 한계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것 같았다.”
전작에 이어 또 한번 ‘서수빈’이라는 날것의 신인 배우를 발견하는데 성공한 윤가은 감독. 사실 자신의 고민을 배우에게 전가했다며 미안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수빈은 어려운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로서 관객들을 설득하고, 그를 응원하게 만들었다.
“‘우리들’ 때부터 캐스팅 도와주신 분이 제가 좋아하는 배우상을 잘 알고 계신다. 경력이 있거나 특이한 마스크가 아니라 가장 보통의 얼굴인데 가장 유연하게 반응하는 배우다. 그래서 제 취향과 원하는 방향성이 있는 배우를 추천해준다. 서수빈 배우는 만났을 때 대화가 너무 재밌었다. 특히 이 친구의 몸이 마음에 들었다. 키가 크기도 했고, 건강한 체격이다. 몸이 가지는 신뢰가 있었다. 그 친구의 살아온 인생을 아주 간단하게 들었지만 자신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0대 배우들을 10여명 모아서 워크샾 할 때는 아무도 역할을 모른다. 괜찮은 배우들 남녀만 모아놓고 즉흥극을 여러 개를 반복해봤다. 수빈 배우는 상대 배우의 모든 표현에 귀를 기울이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의 호흡을 따라서 맞춰주고, 본인이 준비하지 않았더라도 같이 맞춰가는 느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가능성이 너무 궁금해서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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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윤 감독은 “수빈 배우는 제가 전가 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배우한테 큰 짐을 지워줬지만 배우는 그보다 더 많은 고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저한테는 두 가지 고민이 느껴졌다. 자신이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 큰 역할을 주연배우로서 끌고 가는 것에 대한 저에 확신이 있는지, 자신도 자신을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서 잘하고 싶은 욕심과 기대감과 책임의식이 느껴졌다. 저를 실망 시지키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저는 ‘너에 대해 잘 모르니까 실망할 게 없다고 했다. 나도 부담스럽고 힘든데 꺼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강력한 열망을 느끼는 서로 의지해서 해결해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잘하고 있었고 충분히 진실되게 너무 진정성 있게 접근하고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매일 카톡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제가 불안을 느낄 때 했던 일기를 쓰는 것 같은 방식들을 권해줬다.”
서수빈 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것은 주인의 남동생 재희(이재희)도 크게 작용한다. ‘우리집’, ‘우리들’ 주연배우 못지 않은 아역 배우의 발견이다. 윤 감독은 “시나리오를 주지 않았다”고 비결(?)을 밝혔다. “어린 두 배우에게는 쪽대본도 안 줬다. 대사도 많지 않았다. 충분히 남동생으로 존재할 법한 아이를 캐스팅하려고 했다. 훌륭한 후보군이 많았는데, 이재희 배우는 그 얼굴에 개구진 장난이 가득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배우 경험도 있는 친구였다. 형도 ‘여름이 지나가면’ 주연이더라. 재희가 들어왔을 때 그 개구진 얼굴이 너무 좋은데 이상하게 예의 발랐다. 이상한 충동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이야기를 곧잘 듣고 즉흥도 너무 잘했다. 시나리오 설정상 마술을 해야했는데 장기자랑으로 마술을 선보이더라. 판토 마임을 보여줬다. 얼굴의 근육을 다 사용할 줄 알더라. 대사도 그냥 맡겼다. 그 친구 입에서 다 나온 대사였다.”
절친이자 배우 장혜진은 이주인의 모친으로서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모녀의 모습 중 영화를 관람한 모두가 한 목소리로 뽑는 명장면은 세차장 씬이다. “그 장면은 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가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 차를 많이 탔었다. 거기 타서 엄마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친밀도가 쌓이기도 했고, 차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차라는 공간은 폐쇄된 공간이고 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 서로를 마주보지 않아도 된다는 부담감이 덜하다. 은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안심도 된다. 차를 어디에 둘까 고민하다가 세차장이 떠올랐다. 영화를 찍기에는 굉장히 악조건이더라. 근데 밖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데 안에서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게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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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영화 ‘세계의 주인’ 감독 윤가은 [사진=(주)바른손이앤에이] |
우여곡절 끝에 6년만에 세상에 내놓은 ‘세계의 주인’. 영화는 피해자들의 ‘괜찮아’라는 말 뒤에 숨겨진 감정의 깊이를 사려 깊게 통찰하고, ‘편견’이라는 무심한 세상에 날선 울림을 선사한다. 윤가은 감독은 ‘세계주인’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6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기에 관객들 또한 감독의 신작을 보고싶은 마음이 크다. 감독 입장에서도 배움이라는 경험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6년이었다. 어떻게 펼쳐질지 감이 잘 안 잡힌다. 연령대에 대한 고민이나 계획은 없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때 작가로서의 내 의지가 중요한 게 아니구나. 어떠한 주제, 테마, 끌리는 소재든지 나를 적극적으로 버리고 끌려가는게 좋다는 것을 실감했다. 예전에는 제 경험이나 의지 안에 갇혔던 것 같다. 명작을 낸다는 생각은 없지만 명작보다 다작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좋은 작품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는데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배워야 한다. 더 많이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다. 실수하고 엎어져도 웬만하면 만들자, 어디로 가는지 보자는 생각은 강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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