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로미오 앤 줄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연극으로, 국내에는 ‘킬롤로지’의 작가로 잘 알려진 게리 오웬이 집필한 신작이다.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웨일즈의 작은 마을에서 전혀 다른 환경을 가진 두 18살 남녀 ‘로미’와 ‘줄리’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SWTV는 최근 서울 종로구 소재의 한 카페에서 연극 ‘로미오 앤 줄리’의 ‘로미’ 역으로 출연 중인 홍승안과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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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
홍승안은 2014년 연극 ‘밑바닥에서’로 데뷔해 연극 ‘알 앤 제이’, ‘빵야’,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 ‘사의 찬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로, 극단 이면:지의 대표를 맡아 연출,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작품은 두 연인의 드라마틱한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더 심화되고, 현대화된 비극을 선보이는 작품이다. 홍승안은 “현재 서구 사회들의 상황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옛날에는 사랑의 힘으로 모든 걸 이겨냈다면, 지금은 사랑도 이겨낼 수 없는 세상이 왔다는 게 이 작품에서 깔고 있는 이야기 같다”고 언급하며 시대에 맞춰 변모한 비극에 대해 말했다.
“매번 SNS나 인터넷을 보면 굉장히 자극적이면서 단순화돼 있고 흑백 논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느껴요. 이 상황이 옳다 그르다를 얘기하기 전에 함께 살기엔 좋지 않은 세상 같아요. 극 중 나열되는 로미의 상황이 끼리끼리 살아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지금도 분명 일어나고 있고, 그들은 상황과 입장, 환경이 다르다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 사랑조차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같다고 생각해요.”
‘로미오 앤 줄리’는 지난해 영국에서 초연된 작품이며, 작품도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홍승안은 “단순히 영국의 이야기가 아니고, 정말 잘 쓰여진 상황”이라면서, “작품에 깔린 전제나 용어들이 생소하실 수 있지만, 우리의 일이라고 보시면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작가의 특성인 것 같은데 텍스트가 굉장히 좋고, 작품 내에서 작가가 취하고 있는 태도가 질척거리지 않아요. 상황을 나열하고, 그 상황에서 정반대의 정서를 쓰게 만들면서 깔끔하게 쳐내죠. 그러다 보니 보는 사람은 이 상황을 그냥 긴 이야기로 훑다 보니까 그냥 남 일처럼 느끼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살짝만 들여다보면 정말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저와 제 주변 얘기 같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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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
생소하고 멀게 느껴지는 영국이라는 배경과 글을 읽지 못하는 주인공, 보편적인 일상과는 맞닿지 않은 상황의 연속으로 관객이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굉장히 있었다”면서 공감하면서도 공연을 계속해 나가면서 변화하게 된 생각을 전했다.
“처음에는 한국에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낮아서 기본적으로 다 글을 읽고 쓸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은 사회가 심화되면 궁극적으로 있는 자들은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으면서 없는 자들은 기본권을 찾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도 서구처럼 문맹률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표현처럼 어떤 자기 의지와 노력과 제도에 의해서 올라갈 기회들이 있었지만, 지금 같이 무분별한 경쟁 사회가 계속된다면 그런 상황은 줄어들 것이고, 그렇다면 로미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그 환경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꿈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로미오 앤 줄리’에서는 하나같이 숨이 턱턱 막히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이는 극을 위해 만들어진 시련이 아닌, 현실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시련들이기 때문에 더욱 타격이 크다.
작품에 직접 참여하는 홍승안 역시 “답답하고, 작품에 나오는 말처럼 그야말로 토할 것 같았다”고 표현하면서 “어머니도 공연을 보시고 작품이 너무 좋은데 머리가 아프다면서, 본인이 캐스(줄리의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면 미치겠고, 나가고 싶다고 하셨다”며 생생한 후기를 대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기에 이 작품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며 ‘로미오 앤 줄리’가 현 시대에 갖는 의미에 대해 말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힘든 상황이고, 피곤하잖아요. 이 순간을 처음 직관적으로 느꼈을 때 굉장히 숨 막혀요.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해요. 내 일로 직접 직면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이상 직면해야 하죠. 내 일만 하고 살면 좋아요. 근데 그러면 내가 힘들 때 누구도 다가와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괜찮았을 때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면, 내가 괜찮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 나한테 관심을 두지 않는 건 당연한 거예요.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데 그렇게 고독한 채로 뭉개지는 게 삶은 아니잖아요. 작품을 보시면서 나 또는 내 주변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지를 미리 사유하고, 변화하는 내 사고를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두면 이런 답답함 역시 같은 상황을 겪지 않더라도 언젠가 괜찮지 않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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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
한국 초연을 올리는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대해 홍승안은 “런스루를 하면서도 테이블 작업을 했던 것 같다”면서 웃어보였다. 민감하고 예민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이 말이 꼭 필요한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만들어 연출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또 극을 진행하는데 있어 감정의 깊이와 속도감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밝혔다.
“모든 순간이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고, 웃을 일이 아닌 걸 숨긴 채 단순히 유쾌함으로 넘어가는 게 이 작품의 매너예요. 보는 우리가 심각한 거지 그들에게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모든 장면을 다 깊게 연기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오갔어요. 깊게 들어가야 하는 상황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외의 장면까지 모두 나의 슬픔으로 연기해버리면 관객이 느낄 게 적어지니까요. 근데 텍스트가 찡해서 계속 감정이 붙으니까, 그걸 덜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의도적으로 속도감을 밀어붙였죠. 속도가 빠르면 관객도, 배우도 깊어지기가 힘들거든요. 이슈들을 계속 당겨서 핵심을 안 짚고 넘어가는 걸 목표로 장면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이번 ‘로미오 앤 줄리’에서 ‘로미’ 역을 맡은 홍승안은 앞서 연극 ‘알 앤 제이’에서 ‘학생2’ 역을 맡아 줄리엣을 연기한 적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연이 깊은 것 같다는 말에 “대학로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너무 많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홍승안은 원전과 ‘로미오와 줄리’의 연결고리를 말했다.
“‘로미오 앤 줄리’는 대사의 3분의 1이 욕설이고, 셰익스피어의 멋진 언어가 하나도 없죠. 그럼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같이 계산되지 않는 사랑은 존재했고, 그 사랑을 계산해야 하는 세상이 뒤에 깔려있어요. 다만 죽음으로 이어지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다르게 여기는 모두가 살아가기를 선택했으니까, 둘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왜 또 슬프지. (웃음)”
로미는 싱글대디의 삶을 살고 있는 18살 소년으로, 결혼도 육아도 해보지 않은 홍승안의 입장에서는 가깝게 느껴질 리 없는 경험이다. 그가 육아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게 만든 일등공신은 로미 역의 배우가 직접 다루는 아기 인형으로, 배우는 인형의 기저귀를 갈아주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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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
“목이 자꾸 꺾이고요. 다리에 뼈가 없기 때문에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리니까 어깨부터 팔까지 동상처럼 고정된 상태로 발도 잡아줘야 해서 굉장히 어려워요. 특히 기저귀를 가는 게 정말 힘들어요. 아무래도 아기를 다뤄본 적이 없다 보니까 어떻게 하든 행동이 거칠어 보이는데, 대사랑 같이 가면 난잡해지기까지 해서 기저귀 갈면서 대사 10줄 하는 것만 연습실에서 일주일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이게 사실주의 연극의 매력이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고 시간을 썼어요.”
로미가 키우고 있는 아이, 네비는 하룻밤 실수로 생기게 된 아이로 정말 네비가 로미의 친 작식인지에 대한 사실은 작품 내에서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네비에 대해 홍승안은 “자신의 아이라고 믿고 있을 뿐, 로미의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개인적인 해석을 밝히고, 로미가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로미가 친자 검사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네비가 정말 내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까 봐 하지 않기를 결정했다고 생각해요. 작품에서 로미가 ‘이 조그만 여자애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 모두가 걔한테서 등을 돌리는 거니까 계속 생각이 났다’면서, ‘근데 내가 걔 아빠는 되어줄 수 있잖아’라고 말해요. 그 말을 통해서 로미의 삶을 보게 된 것 같아요. 로미도 아빠가 없었고, 그럼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잖아요. 나는 엄마가 있음에도 이렇게 고통스러웠으니까 이렇게 된다면 이 아이는 더 힘든 시작점을 맞이하게 되는 걸 아는 거죠. 그래서 로미가 네비를 자신의 아이일 거라 굳게 믿은 힘은 나와 관계된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에서 나온 것 같고, 난 더 나은 세상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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