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인물부터 오브제, 캐스팅까지…‘이매지너리’ 퍼즐처럼 맞춘 무대의 언어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5-06-28 08: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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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본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부터 2025년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뼈대는 지켜졌지만, 인물에 관련한 부분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두 형제의 관계성과 리아의 정체성, 그리고 이들의 관계성까지 계속 엎고 바꿨다고 밝힌 김 작가는 세 인물의 시작점을 회상했다.

 

▲ 사진=이비컴퍼니

 

(김정민 작가) “처음에는 두 형제가 함께 ‘이매지너리’를 개발한 거였어요. 두 형제의 엄마인 과학자 리아가 카이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하던 프로그램을 준과 카이가 이어받고, 베타 테스트를 계속하다 이제는 때가 왔다고 생각해 카이의 기억을 지우게 되는 이야기였죠. 근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데 있어서 갈등의 깊이가 얕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어떠한 상처로 인해 오랫동안 보지 못한 형제가 이매지너리를 통해 그들의 기억을 만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서사를 통해 ‘기억’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3명의 등장인물 중 이야기의 진상과 가까이 맞닿아있는 인물은 기억 삭제를 요청한 카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반사회적 인격장애(이하 ASPD)를 겪고 있는 카이는 자기중심적이고 충동적이며 감정을 해석하는 기능이 떨어지지만, 흔히 비치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와는 거리가 멀다.

작품을 구상하며 ASPD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고, 다양한 양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한 김 작가는 카이라는 인물을 통해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ASPD만큼 강하게 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많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상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정민 작가) “카이는 남들이 봤을 때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의 사회 활동이 가능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답답한 상황인 거예요. 나는 어느 정도 훈련이 되었고, 한 단계 더 넘어서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은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은 나의 아픔 때문에 그걸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배우들이 연기하기 어려웠어요. 아예 증상이 너무 강해서 격리한 채 치료해야 하는 인물이 아니라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지만, 그 안에 결핍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에 대해 세 명의 카이가 많은 고민이 있었죠.”

타인을 잘 이해하지 못해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배울 수 있는 감정을 학습하지 못한 카이는 치료의 일환으로 영화를 감상하며 극 중에도 ‘마틸다’, ‘겨울왕국’, ‘스타워즈’, ‘스파이더맨’ 등을 언급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스크린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관계를 살피면서 알게 되는 게 굉장히 많았던 카이는 자연스럽게 영화를 전공하게 되었고, 타인과 협력해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매지너리를 신청하게 된다. 김 작가는 극 중 카이가 언급하는 영화들에도 그의 바람이 숨어있다고 설명했다.


(김정민 작가) “카이가 좋아하거나 언급하는 영화를 보면 어떠한 결핍이 있는 인물들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치유하거나, 가족을 형성하는 영화들이에요. 카이가 인식을 한 것도 있고, 안 한 것도 있지만 그런 영화들이 카이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고, 영화 속 등장하는 관계들을 본인도 가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그 영화들을 통해 대변하고 싶기도 했어요.”

극이 끝난 시점에서 졸업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 카이는 어떠한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에 김 작가는 “이벤트로 3명의 카이가 각자 쓴 시나리오를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면서 웃어보였다.

(김정민 작가) “아마 카이 자기 자신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한 시나리오였을 거고, 시나리오 속 주인공 역시 카이였을 것 같아요. 엔딩 부분에서 원래 시나리오에서 수정했다는 말이 나오는 데 아마 형과의 관계를 통해 얻은 것들이 반영되었을 거고, 카이가 좋아했던 영화들처럼 그 긴 과정을 통해 나름의 답을 찾은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야기의 주체가 카이라면,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가진 키맨(Key Man)은 카이의 이매지너리 속 살아 움직이는 기억, 리아다. 리아에 대해 “역으로 찾아가게 된 캐릭터”라고 말한 김 작가는 “ASPD와의 연결성을 찾는 게 과제”였다고 밝혔다.

(김정민 작가) “리아가 카이도 모르는 기억 저편에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영향을 끼쳤길래 카이가 ASPD를 갖게 됐을까 고민했어요. 엄마와 형이 떠난 대신 남아서 카이 만을 보호하려던 행위가 오히려 카이가 자기의 충동과 하고 싶은 것만을 생각하고, 사람들을 밀어내고 상처 주는 ASPD로 발현하게 되었다는 아이러니를 갖고 싶어서 생겨났죠.”

리아가 들고나오는 화분은 이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오브제로, 연출의 큰 과제이기도 했다. 많은 고민이 따랐던 부분을 해결한 것은 다름 아닌 배우에게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김정민 작가) “처음에는 3명의 리아가 다르니까 3명 다 다른 오브제를 썼어요. 각자와 관련이 있는 오브제를 썼는데, 그러다 보니 너무 설명적이고 1차원 적인 거죠. 관련해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수빈 배우가 화분의 상태가 변하면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래서 기억을 통해 관계가 회복되는 것처럼, 시든 화분 또한 마지막에는 피어난 형태로 변하는 연출을 선택하게 됐죠. 그러면서도 배우마다 차별성을 주기 위해 똑같은 화분이지만 식물은 다르게 하는 방식을 차용했어요.”

 

▲ 사진=이비컴퍼니

주로 이미지가 비슷한 배우를 같은 역에 캐스팅하는 보편적인 경우와 달리 리아는 성별과 나이대가 확연히 다른 배우들로 꾸린 캐스팅으로 개막 전부터 관심을 받았다. 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리아라는 캐릭터 덕에 가능했던 것으로, 연출의 아이디어가 컸다고 밝혔다.

(김정민 작가) “리아는 카이가 어릴 때 만들어졌으니까 ‘때론 날 떠난 그 날의 형처럼, 때론 우릴 지켜준 엄마처럼, 평범하게 컸을 나처럼’이라는 가사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런 콘셉트를 살려서 아예 캐스팅을 다르게 해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실현은 불가능하지만, 리아가 나오는 매 장면마다 다른 배우가 등장해도 재밌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죠.”

(성찬경 작곡) “리아들이 각자 달라서 배우별로 아예 다른 넘버를 준다는 선택지도 있긴 했어요. 지금 초연 과정에서는 같은 노래를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불러보는 쪽으로 결정했는데, 시즌을 거듭하면서 디테일이 쌓였을 때 리아의 특정 넘버는 배우마다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어요.”

특히 리아 역으로 출연 중인 김주안은 그 어느 작품보다도 시간이 흘러가는 게 실감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2012년생인 그는 공연을 하는 동안 계속 키가 자라고, 변성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김정민 작가) “저희의 픽이었죠. (웃음) 세 명의 배우를 다르게 가자고 했을 때부터 내가 찜해놓은 대학로의 미래가 있다고 했어요. 다른 배우들은 다 성인이고 경력이 오래되었지만, 주안이는 어려서 반응이 굉장히 즉각적이에요. 그래서 주안이가 어떻게 무대에서 변해가는지를 보고 있으면 우리의 옛날을 떠올리기도 하고, 주안이가 아닌 리아로서도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해요.”

만약 ‘이매지너리’의 두 번째 시즌을 올리게 된다면 어떤 방향성을 갖고 발전시켜 나갈 것 같은지에 대해서는 관찰자 역할을 한 ‘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김정민 작가) “3명을 봤을 때 준이 오래 외롭게 살아왔는데, 준의 마음을 쏟아내는 구간이 많이 없어서 준의 생각을 조금 더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긴 장면이 아니더라도 준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졌는지 조금이라도 우리가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공감되어서 그 부분을 고민해 볼 것 같아요.”

폐막을 앞둔 시점, 이들은 또다시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사랑해 주실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김 작가는 ‘이매지너리’가 지닌 목표를 전했다.

(김정민 작가) “사실 전 제 작품을 보고 감동은 받지만 울지는 않는데 연습실에서 ‘이매지너리’를 보면서 운 적이 있어요. 그때 이 작품이 우리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모두가 자기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퍼즐이 있을 것이고, 회복하고 싶은 관계가 있을 거로 생각해요. 누구나 가담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지점을 더 잘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요.”

공교롭게도 올해는 같은 시기에 작업을 시작한 ‘이매지너리’와 쇼플레이 인물 프로젝트 3부작을 모두 끝마치게 되었다. 김 작가는 “돌이켜 보니 항상 ‘이매지너리’를 준비할 때 ‘니진스키’를 하고 있었더라. 감사한 일이다”라면서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김정민 작가) “작곡가님이랑 매번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얘기를 해요. 근데 돌이켜보면 6년 사이에 많은 걸 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매지너리’를 무대에 올리고, ‘스트라빈스키’까지 3부작을 마치는 이 시점이 저희에게는 하나의 큰 시기를 마무리 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정민 작가와 성찬경 작곡의 다음 작품은 공연예술 창작산실에 선정되어 내년 초 무대에 오른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해당 작품을 준비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찾는 과정에 들어서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진한 코미디나 쇼 뮤지컬을 써보고 싶다는 희망 사항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이매지너리’의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성찬경 작곡) “저의 소중한 한 조각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민 작가) “요즘 우리 모두 힘든 삶을 살면서 고민이 있겠지만, 그 와중에도 각자의 머릿속에 모두가 갖고 있는 아름답고, 넓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우주가 있으니 이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고, 내 우주에 있는 기억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더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약간의 힘을 얻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 저희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한편 ‘이매지너리’는 오는 7월6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 3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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