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행과 나날’ 미야케 쇼 감독 “심은경 캐스팅? 어느 날 번쩍 머릿속에 내려와”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5-12-04 17: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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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고 있는 영상 중에서도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발견해서 영화화하는 게 저희의 일인 것 같습니다.”


‘여행과 나날’은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가 지도에도 없는 설국의 여관에서 만난 ‘벤조’와 만나 의외의 시간을 보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작품의 연출을 맡은 미야케 쇼 감독은 최근 서울 동작구 소재의 배급사 엣나인필름에서 국내 언론들과 라운드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 사진=엣나인필름

 

미야케 쇼는 일본의 주목 받는 젊은 감독으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등으로 제92회 키네마 준보 베스트 텐 일본 영화 1·3위를 기록하고 ‘여행과 나날’로 올해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의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


지난 1일 ‘여행과 나날’의 한국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내한한 미야케 쇼 감독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창구로 국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미야케 쇼 감독은 “너무 훌륭한 시간이었다. 처음 작품을 만들었을 때부터 한국에는 반드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고, 몇 년 전부터 작품을 만들 때마다 한국에 왔는데 올 때마다 자극이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한국 관객분들은 진지한 눈빛과 태도로 저희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저도 진지한 마음으로 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는 일본 만화가 츠게 요시하루의 ‘해변의 서경’과 ‘혼야라동의 벤상’을 원작으로 한다. 프로듀서로부터 영화화를 제안받았다고 밝힌 그는 “츠게 요시하루 작가의 만화는 다른 어떤 만화와도 다르다고 느꼈다”며 원작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만화의 한 칸과 한 칸이 연결되는 사이에 많은 놀라움이 있다고 느꼈고, 페이지를 넘겼을 때 나오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서도 놀라움을 느낄 수 있는 게 그분의 만화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놀라움을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원작에서 느낀 ‘놀라움’은 영화의 테마인 ‘여행’과 자연스레 이어졌다. 미야케 쇼 감독은 “매일 보거나 만나는 것이라면 놀라움이 없을 거다. 근데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도 여행을 와서는 놀랍게 느껴지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면서, “이후 제가 일본에 귀국했을 때는 이전과 또 달라 보이는 순간이 있을 거라 이러한 부분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진=엣나인필름

 

츠게 요시하루의 만화 속 배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으로 여겨질 만큼 정교하게 그려진 것으로 유명하다. 감독 역시 “츠게 요시하루 작가의 만화를 보면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그 뒤에 그려져 있는 배경이 매우 훌륭하다”면서, “그 안에 날씨의 변화도 들어가 있고, 땅의 모습과 그 지역의 역사까지도 다 들어가 있는 게 이 분의 만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을 영화로 옮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그는 “실제 지명도 만화 안에 들어가 있어서 같은 곳을 직접 가보기도 했는데, 시대가 많이 변해서 전혀 달랐다. 그래서 몇 번이나 만화를 읽으면서 비슷한 분위기의 장소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밝혔다.

또 감독은 “중요한 건 흉내 낸다기보다는 비슷한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라면서, “원작 자체가 눈과 귀, 피부로 느끼는 오감을 자극하는 만화라서 영화 역시 감각을 리셋할 수 있는 장소를 찾고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여 말했다.

‘여행과 나날’은 아름다운 풍광과 그 앞에 선 인물들을 정지된 카메라 앵글로 고요하게 담아낸다. 이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연상되는 기법으로, 실제로 그는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면서, “오즈 감독의 작품에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우리가 평상시에 못 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평상시에 생활할 때 많은 것을 놓쳐서 보지 못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세계도 매일 변화하고 있지 않나. 그 변화를 오즈 감독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촬영할 때 카메라가 같이 움직이면 강의 흐름, 바람의 흐름과 같은 움직임이 전혀 안 보이는데, 카메라를 가만히 세워놓고 촬영하면 볼 수 있다. 이것처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걸 통해서 변화와 움직임을 보여주는 게 오즈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저도 똑같이 움직이지 않고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극 중 잔잔하고도 따뜻한 여행에는 심은경이 선두에 서 관객들을 이끈다. 창작의 벽에 부딪힌 한국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 ‘이’ 역으로 등장한 그는 미야케 쇼 감독과 처음으로 합을 맞췄다.

 

▲ 사진=엣나인필름

 

캐스팅 계기에 대해 “어느 날 번쩍 그 분이 (머릿 속에) 내려오셨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감독은 “심은경 배우가 이 중년 남자 역할을 하게 되면 재미있는 걸 보여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번뜩 들었고, 직접 만났을 때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특별한 분이라고 느꼈다”며 회상했다.

“원작 주인공은 도쿄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으로 가서 만남을 가진다. 평상시에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거다. 공통점도 없고 닮은 것도 전혀 없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서 마주친다는 게 이번 영화의 중요한 테마라고 생각했다. 심은경 배우처럼 국적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전혀 다른 사람이 이방인처럼 이 지역에 떨어져서 만나는, 즉 여행자의 시점 자체가 저희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심은경이라는 배우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감독은 “굉장히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신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감정 표현을 리얼하게 잘 해주시는 분 중 한 명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희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여행자라고 생각하는데, 그 선두에 심은경 배우가 있기 때문에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만족을 표했다.

“이번 영화에는 유머가 꼭 필요했다. 극 중 심각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심은경 배우가 가볍게 연기해 주시면서 중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이 세계에 있어 주셨기 때문에 관객분들도 그걸 보며 가볍게 웃을 수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 심은경 배우라고 생각한다.”

심은경과 연기 호흡을 맞춘 여관 주인으로는 영화 ‘용의자 X의 헌신’, 드라마 [야마토 나데시코], [굿 럭], [슈퍼 샐러리맨 사에나이씨] 등에서 활약한 츠츠미 신이치가 캐스팅 됐다. 감독은 “어떤 의미로는 도전이었다. 캐스팅할 때 이 역할을 어떻게 표현해 주실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다”며 함께 작업한 소감을 전했다.

“츠츠미 배우는 한국에서 드라마, 영화 스타로 잘 알려졌지만, 일본에서는 연극 배우로 인식되어있다. 1년에 최소 한두 번은 연극 무대에 길게 참여하고 계시고, 자신은 연극 속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연극 무대에 정통하신 분이다.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오셨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의 연기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츠츠미 배우도 이번 영화에 대해 이 역할은 나한테도 도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도전에 가장 잘 성공해 내신 것 같다.”

 

▲ 사진=엣나인필름

이들의 함께한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극 중 등장하는 두 갈래의 이야기, 여름이야기와 겨울이야기 중 겨울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나간 이들은 실제로 겨울이면 폭설이 내리는 일본 북서부에 위치한 야마가타현의 쇼나이 지방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츠츠미 신이치 배우, 심은경 배우 모두 프로페셔널한 베테랑이시고, 일할 때도 그런 면모를 보여주신다. 근데 눈밭에서는 마치 아이들처럼 굉장히 즐거워하신 게 인상적이었다. 눈밭에서 촬영하다보면 가끔 너구리가 나타나는데 그러면 츠츠미 배우가 ‘감독 지금 너구리 봤어?’라면서 깜짝 놀라시는 게 아이 같았다. 두 배우 모두 순수한 모습이 있었고, 그런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감독으로서 행복한 순간이었다.”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직감을 믿고 있으며, 여태까지는 틀린 적이 없다고 말한 감독은 추후에 함께 작업하고 싶은 한국 배우를 묻는 질문에 “누구라고 대답은 못 드리겠다”면서 색다른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의 많은 배우들이 있고 제가 함께 작업하고 싶은 분도 있지만, 그 외에도 더 많은 분들이 계시다. 한 가지 하고 싶은 건 한국 분들도 발견하지 못한 어떤 배우의 가능성을 새로 발견해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최근 한국 영화는 관객 수가 눈에 띄게 줄고 12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비경쟁 부문 모두 진출에 실패하는 등 암흑기를 겪고 있는 반면, 일본 영화는 올해 칸 영화제에만 장편 6편이 초청되고 꾸준히 신진 감독이 발굴되는 등 빛을 보고 있다.

이에 관련해 미야케 쇼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현실과 위기감에 대해서는 뉴스를 통해 잘 알고 있지만,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 관객, 매스컴, 비평가들과 이야기해 보면 진심으로 레벨이 정말 높다. 감독과 배우도 굉장히 힘 있고 포텐셜이 있다”면서, “따라서 제 생각에는 영화인들의 책임이 아닌 다른 쪽에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는 견해를 남겼다.

이어 일본 영화계에 대해서는 “일본의 관객, 작품 수는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아트하우스 같은 작은 극장들이 전국 각지에 남아있고, 열심히 영화를 상영해 주고 있다. 거기서 다양한 영화를 본 이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남아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혹시나 이 영화관이 없어진다면 과연 이런 현상이 계속될 수 있을지 우려도 많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영상 포맷이 다양화되며 관객층이 분산되고, 전 세계적으로 영화 산업은 점차 쇠퇴하는 중이다. 미야케 쇼 감독은 “연애 리얼리티 쇼가 계속해서 방송되고,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지에서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데도 로맨스 영화와 전쟁 영화를 찍어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픽션을 필요로 했고, 앞으로도 필요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픽션을 필요로 하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찍어나가는 게 제 스탠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고 있는 영상들 안에서도 우리가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그걸 발견해서 영화화하는 게 우리들의 일이 아닐까 싶다.”

한편 ‘여행과 나날’은 오는 10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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