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현실을 거부하고 환상에 몰두한 조선의 미치광이 세자 이훤, 그는 온갖 기행을 일삼다 결국 칼을 빼들고 어전에 쳐들어가기에 이르러 냉혹한 아버지 이금에 의해 뒤주에 갇힌다.
평소 온갖 무기와 관, 잡서들을 수집하던 그는 품속에 도교의 주문서 옥추경을 지니고 있었고, 그 위에 자신의 이름을 피로 휘갈겨 궤에 붙인 순간 51년 전 과거로 내던져진다. 그리고 그런 그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 어린 날의 이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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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블루스테이지 |
SWTV는 최근 서울 강남구 소재의 백암아트홀에서 뮤지컬 ‘쉐도우’의 ‘사도’ 역을 맡은 신은총과 만나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쉐도우’는 조선시대 영조가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폐위한 뒤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인 사건 임오화변을 모티프로 한 창작 뮤지컬로, 부자의 뒤엉킨 운명을 타임루프 판타지로 재구성했다. 3년에 걸친 개발 과정을 거친 작품은 지난 9월 초연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신은총은 ‘쉐도우’를 가장 처음 만난 배우로, 2023년 당시 작품의 넘버 중 두 곡을 데모 녹음하며 작품과 인연을 맺었다.
“1번 넘버인 ‘EMO FROM THE EAST’와 지금은 영조의 넘버가 된 ‘살아 내 맘에’를 불렀어요. 녹음 현장에 같이 계셨던 작가님께 대략적인 줄거리와 내용을 전달받고 녹음을 시작했죠. 이 두 넘버가 굉장히 강렬하게 제 마음에 다가와서 언제 이 작품을 하는지 연출님을 뵐 때마다 계속 졸랐죠. 그러다 일이 진행되면서 같이 ‘쉐도우’를 하자는 제의가 왔어요. 흔쾌히 한다고 했죠.”
임오화변은 국왕인 아버지가 훗날 후계자가 될 아들을 비참하게 죽인 비극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앞서 여러 창작물의 소재로 쓰인 바 있음에도 엄연히 조선의 역사인 만큼 신은총은 대본을 처음 받아 봤을 당시 매우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사실이 뮤지컬이나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중요한 건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왜곡하는 실수가 생기게 되면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었어요. 근데 다행히 연출·작가님이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하셨고, 최대한 역사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꼼꼼하게 준비해 주셔서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픽션을 섞어서 좀 더 편하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죠.”
역사를 다룬 작품인 만큼 창작진의 꼼꼼한 자료조사가 함께했다. 신은총을 비롯한 배우들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 허재인 작가가 창작 과정에서 공부한 모든 역사 자료를 정리한 파일을 넘겨받았다고.
“영조 역을 맡은 배우는 영조에 관련한 내용, 사도 역을 맡은 배우에게는 사도에 관련한 내용을 넘겨주셨죠. 그리고 그 뒤에는 저희가 캐릭터를 입히기 편하도록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영조와 사도로서 일기를 쓴 것들을 같이 보여주셨어요. 그게 제일 많이 도움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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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블루스테이지 |
그와 별개로 역사적 인물을 직접 연기하는 배우의 개별적인 탐구도 이어졌다. 사도 역을 맡은 만큼 사도의 입장을 많이 생각하고, 그 부분에 맞춰서 공부했다는 신은총은 “유튜브에 역사 선생님들이 다양한 입장에서 알려주시는 정보와 자료를 많이 찾아봤다”고 말했다.
“사도세자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지만, 이번에 깊게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됐고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늘 영조가 정말 나쁜 아빠라고 생각했는데 사도도 제정신이 아닌 놈이었다는 거예요. (웃음)”
창작 과정에서 상상력이 더해졌지만, 1762년 사도세자의 말과 행동이 그대로 2025년 ‘쉐도우’의 대본에 옮겨지기도 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사도세자의 유언으로 신은총은 이 대사가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사도가 ‘흔들지 말라, 어지럽다’라는 대사를 해요. 왜 이렇게 말하는 거지 하고 찾아보니까 알고 보니 사도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뒤주를 흔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되게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저한테는 사도나 영조가 했던 말 중에 이 말이 제일 깊게 후벼 팠던 것 같아요.”
신은총이 맡은 인물은 영조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를 뻔한 조선의 왕자 ‘사도’이지만, 작품 자체가 부자의 관계성에 집중한 만큼 그는 이금의 아들 ‘이훤’에 집중해 연기를 펼쳤다.
“사도와 영조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고, 가족이잖아요. 제가 겪은 가족 간의 경험과도 비슷한 점이 있었어요. 그중에는 깊은 상처가 되는 일들도 있어서 이입이 많이 됐죠.”
따라서 그는 사도를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벌인 광기 어린 기행들 역시 몸과 마음이 동시에 자라지 못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사도의 첫 넘버부터 마지막 넘버까지 사랑받고 싶다는 메시지가 계속 나와요. 그래서 ‘아버지 나를 사랑해 줘요’가 이 캐릭터의 가장 중심이 되는 말이라 생각했어요. 어린아이는 갖고 싶은 걸 못 가지면 성질도 부리고, 떼도 쓰잖아요. 근데 사도는 몸이 성장해서 어른이 됐지만, 마음은 그대로 어린아이에 남아있어서 이런 모습이 된 것 같아요.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의 표현이 엉뚱한 데로 발산이 되기 시작하면서 기행을 벌이게 되고, 결국에는 칼을 들고 아버지한테까지 가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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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블루스테이지 |
뒤틀린 부자의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내는 장치로는 시간 이동이 쓰였다. 사도는 뒤주를 통해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만나고, 또 다른 미래를 보기도 하며 애증의 대상을 다시 보게 된다.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만난 사도는 현시점과는 딴판인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되려 믿음직하게 그를 이끌기까지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어린 영조를 만났을 때의 모습으로 사도의 속마음은 겉모습과 같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유일하게 사도가 마음을 붙이고, 동질감을 느끼는 친구가 생긴 거예요. 겉으로 보면 사도가 형처럼 이끌어주지만, 반대로 저는 제 아버지인지 모르는 어린 영조에게 오히려 더 의지했다고 생각해요. 또 현재에서 사도가 했던 행동을 어린 영조가 그대로 하고 있으니까, 사도가 어린 영조에게 하는 말은 다 자기 자신한테 하는 말 같기도 해요. 그래서 어린 영조가 자신의 아빠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오는 배신감이 더 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같은 결로 본 공연을 준비하며 신은총이 새로 주목하게 된 부분도 겉으로 보이는 광증과 결핍이 아닌 그 속에 숨겨진 감정이었다.
“쇼케이스 때의 사도는 좀 더 광증과 결핍에 대한 부분을 좀 더 많이 부각시켰다면, 이번에는 사랑받지 못해서 생겨난 나비 효과들에 좀 더 주목했죠. 사도의 광증 안에 분명히 정말로 그가 하고 싶었던 진실된 말과 숨겨진 감정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광증 안에 가려진 또 다른 사도의 모습을 많이 꺼내보려고 노력했어요.”
오롯이 2명이 만들어 나가는 작품인 만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영조와의 호흡도 중요한 요소중 하나다. 이에 신은총이 사도로서 만나고 있는 3명의 영조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한)지상이 형은 소름끼쳐요. 정신적인 압박이 되게 많이 느껴지는 영조 중 한 명이고요. (김)찬호 형은 감정의 골이 깊어서 제가 좀 더 빨리 끌어안을 수 있는 아빠 같아요. (박)민성이 형은 그냥 무서운 아빠예요. (웃음) 세 분 다 호흡이 다른데 ‘뒤주를 가져와라’라는 대사를 할 때 성격이 다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지상이 형은 속삭이고, 찬호 형은 되게 감정을 칼처럼 끊어버려요. 민성이 형은 소리를 지르죠. 세 형님이 주는 에너지가 다 다르다보니 저도 감정선이 달라져서 각자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간 이동을 소재로 한 창작물은 흔하지만, ‘쉐도우’는 편집 또는 서술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을 수 없는 라이브 공연인 만큼 배우로서는 관객의 이해를 위해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이를 위해 그는 “옥추경을 통해 과거로 넘어갔을 때는, 정신 상태는 힘들 수 있어도 몸은 멀쩡한 상태일 것을 저희끼리의 규칙으로 정해놨다”고 전하기도 했다.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돌아올 때마다 사도는 점점 죽어가는 걸 많이 표현하려고 했어요. 화면에 뒤주에 갇힌 지 며칠째인지 자막이 나오는데 그 일수에 따라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사도의 몸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죠. 관객분들이 사도가 현재로 돌아왔다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끔 숨소리 하나부터 몸의 태도, 움직임까지 많이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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