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행과 나날’ 심은경 “바람에 모자 날아가고 삐끗…찰리 채플린 된 기분이었죠”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5-12-09 13: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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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여행과 나날’은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가 지도에도 없는 설국의 여관에서 만난 ‘벤조’와 만나 의외의 시간을 보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극 중 각본가 ‘이’ 역을 맡아 연기한 심은경은 최근 서울 동작구 소재의 아트나인에서 국내 언론들과 라운드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 사진=엣나인필름


이번 영화는 일본 영화계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으로, 지난 8월 개최된 제7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서 국제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최고 영예인 황금표범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극 중 주인공을 맡은 심은경 역시 일본의 닛칸스포츠영화대상과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곳곳에서 이번 영화에 대한 호평이 잇따르는 가운데, 한국 개봉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에 대해 심은경은 “많이 기대되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제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배운 자세”라면서, “개봉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홍보 활동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떠한 결과나 평가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저한테 있어서는 이 작품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 하나의 의미만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면서, “들뜨기에는 저도 나이를 먹어가니까 체력적으로 벅찬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다”며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여행과 나날’에 참여하게 된 소감에 대해서는 “그동안 찍어보고 싶었던 작품을 만난 것 같다”고 말하며, “연기적인 측면으로 다른 면들을 보여주게 된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동안 출연했던 다른 작품들은 캐릭터 특성이 뚜렷했기 때문에 표현 방식에 있어서 항상 접근방식이 달랐는데, 이번에는 많이 덜어내려 했다. 감독님께도 이번 영화에서는 아무것도 안 할 예정이라고 농담처럼 말씀드리기도 했다. 그랬더니 감독님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심은경을 찍을 수 있는 행운을 내가 가졌다’고 말해주셨다. 이 농담처럼 여백을 많이 생각하면서 연기한 점이 제게 특별하게 작용했다.”

 

 

 ▲ 사진=엣나인필름

 

이번 영화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연기를 펼친 심은경은 카메라 앵글 안에서 각본가 ‘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도 직업병처럼 어쩔 수 없이 카메라 앞에 서면 무언가를 더 표현하고 감정을 내비치지 않으면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근데 그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걸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다시 깨닫게 됐다”며 배우로서 성장한 부분을 말하기도 했다.

“영화라는 건 프레임끼리 연결되면서 완성되는 것이고, 편집이라는 과정을 통해 탄생하니까 매 순간순간 힘을 줄 필요는 없다는 거다. 포인트를 잘 잡아서 그 순간에 걸맞는 표현을 한 번씩 짚어주면 되는 거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아도 영화 속에 들어가면 그 캐릭터로서 존재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일일이 생각하면서 행동하지 않지 않나. 거기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그래서 감독님과 앵글을 같이 보면서 세세한 움직임들에 대해 상의하고 계산하면서 연기를 만들어냈다.”

심은경이 맡아 연기한 ‘이’는 한국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로, 슬럼프를 겪게 되며 특별한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나는 인물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감독님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고 말했다.

또 미야케 쇼 감독의 ‘찐팬’임을 자청한 심은경은 “제가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는 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초상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애정을 표하면서도 “근데 이번에는 내 이야기가 담겨있었고, 동시에 표현해 보고 싶은 캐릭터를 만났다”고 전했다.

“‘이’가 ‘저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라는 대사를 뱉는 장면이 있는데 그 대사에 확 꽂혔던 것 같다. 저 자신도 똑같이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지만, 그 말을 내뱉을 자신도 없고 숨겨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근데 이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되게 용기가 있었다. 자기 자신이 잘 모르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나보다 한 발 더 나간 캐릭터가 아닐까 싶었다. 이러한 캐릭터의 자세에 많이 이끌렸다.”

영화의 원작 만화에서 ‘이’는 본래 일본 중년 남성 캐릭터로, 미야케 쇼 감독이 심은경을 이 역할에 점찍으며 설정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원작과 똑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가 불현듯 제 생각이 나셨다고 한다”고 운을 띄우며 미야케 쇼 감독과의 인연을 풀어놓았다.

 

▲ 사진=엣나인필름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님의 작품 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라는 영화의 GV를 같이 진행했다. 그때 처음 감독님과 만나서 인사를 나누게 됐고, 이후에 별다른 대화를 주고 받지는 않았는데 제 모습이 많이 인상 깊었다고 하시더라. 멋도 부리지 않고,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는 제 모습이 지금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이’라는 캐릭터와 맞물리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고, 제가 이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영화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한국인으로 설정이 바뀐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극 중 ‘이’는 손글씨로 한글 시나리오를 쓰고, 심은경의 목소리로 한국어 내레이션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에 심은경은 한글로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은 처음 대본을 봤을 때부터 있었으나, 한국어 내레이션은 촬영장에서의 과정으로부터 탄생했다는 비하인드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어 내레이션은 영화를 다 촬영하고 나서 후반 작업할 때 생각하셨다고 한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저를 계속 관찰하셨다. 가끔씩 한국어를 할 때의 모습을 보면 굉장히 다른 느낌이 들고, 제 모국어이기도 하니까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하더라. 그래서 다시 대본을 작성하셔서 추가가 된 부분이다.”

설국의 정적인 분위기와 맞게 ‘여행과 나날’은 대사의 쓰임이 적은 편에 속한다. 직접적인 말이 아닌 여백으로 심상을 전하는 영화에서 연기를 소화한 것에 대해 심은경은 “오히려 대사가 많이 없고, 여백이 많은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에 틀에 정해지지 않고 느끼는 대로 표현할 수 있어서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말이라는 것이 영화 안에서 큰 주제로 다루고 있고, 말에서 벗어나는 것과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한 주제를 알고 연기하니까 보다 더 제 안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보여지는 연기를 하기보다는 저도 각본가 ‘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서 그때그때 느끼는 심상들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 사진=엣나인필름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에 ‘언어’라는 주제는 늘 그에게 심도 있게 고찰할 만한 것이었다. 심은경은 “일본에서의 활동은 쉽지만은 않았다. 언어라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던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보다도 일본어가 더 안됐던 시절에 ‘신문기자’, ‘블루아워’를 만나서 몇몇 대사들은 그냥 암기해서 대사를 했다.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겪고 나니까 물론 언어는 내 의사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작품을 향한 진심을 전하는 데는 언어만이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말로는 설명이 잘 안되는 진심을 어떻게 잘 연기로 승화해서 전달할 수 있을지 그 부분에 대해 깊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러한 그의 고민에 꼭 맞는 열쇠를 건네준 건 다름 아닌 이번 영화와 미야케 쇼 감독이었다. 심은경은 ‘여행과 나날’의 GV 때 있었던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밝히며 이를 객석까지 확장하고 싶다고 전했다.

“감독님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단순하고도 명쾌한 답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때 비로소 제가 이 영화에 끌리게 된 이유를 더 확연하게 느끼게 된 것 같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심상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구태여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관객분들하고 나누고 싶다.”

드라마 [황진이], [태왕사신기]에서의 아역으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것을 시작으로 ‘수상한 그녀’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뒤 ‘신문기자’, ‘블루 아워’ 등으로 일본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대거 수상했으나, 여전히 그는 “지금도 제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은경은 “(연기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제가 무엇보다 연기를 좋아하고, 지금도 연기를 너무 잘하고 싶어서 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나 골몰하고 있다”면서, “추운 것도 더운 것도 생각이 안 날 만큼 연기에 빠진 저 자신을 느끼고,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생각한다. 그러면 재능이 없고 천재가 아니어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사진=엣나인필름


이러한 그의 말에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자 “무언가를 제대로 하려면 자기 자신한테 냉정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심은경은 “그러니 저 자신이 한없이 부족한 것 같고, 그걸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계속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며 연기활동을 이어가며 느낀 점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릴 때는 한국에서 제일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저 자신에 대한 기대치와 약간의 오만도 있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최고가 되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깨닫게 됐고, 그동안 작품에서 어떻게 녹아 들어야 하는지를 많이 간과했던 것 같다는 깨달음을 많이 느끼게 됐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해왔던 연기가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지더라. 그것을 느낀 시점부터가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심은경이 만족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촬영장에서 연기를 하고 나서 모니터를 확인했을 때 만족스러운 연기가 된 것 같고, 감독님도 좋아하실 때 기분이 좋고 짜릿하다”면서,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좋은 표현들이 나오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열연을 펼친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타 작품과 달리 ‘여행과 나날’은 장면마다 여행하는 것 같은 느슨한 기분으로 촬영했다고 전한 그는 이번 영화에 고스란히 담긴 우연의 기쁨을 말했다.

“다리 위에서 모자가 날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다 정해놓고 촬영을 한 게 아니라 정말 우연이었다. 순간 정말 강풍이 불어서 모자가 날아갔고, 길이 얼어있어서 제가 삐끗했다. 모든 게 우연이 낳은 산물이다. 모자가 날아가서 강에 빠질 수도 있고, 자칫하다 발목이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이 순간이 담겨 있는 게 너무 기뻤다. ‘아 그래 이런 게 영화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옛날에 너무 좋아했던 찰리 채플린 같은 걸 내가 하고 있다는 기쁨에 그 장면을 촬영했을 때 너무 다행이고, 신이 나를 도우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과 나날’ 이후 심은경은 한일 양국에서 바쁘게 활동할 예정이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 100주년 기념 드라마 [화성의 여왕]이 오는 13일부터 방영을 시작하고, 한국에서는 tvN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 내년 상반기에 방영된다.

그는 100년 후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SF드라마 [화성의 여왕]에서 화성에서 나고 자란 화성인 ‘가레-J0517’로 등장하고, 블랙코미디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에서는 리얼캐피탈의 실무자 ‘요나’로 활약한다.

심은경은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법’에 대해 “많은 분이 공감하시고 울분을 토할 것 같다. 제가 맡은 캐릭터는 기존에 제가 맡았던 역할하고는 많이 상반되어있다.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자체가 제게도 도전이다. 하루하루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편 ‘여행과 나날’은 오는 10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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