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틱틱붐’은 ‘렌트’로 잘 알려진 극작가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 뮤지컬로, 1990년대 서른 살을 맞은 예술가가 겪는 현실과 예술 사이의 고뇌를 그린다.
1990년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워크숍을 통해 1인극으로 처음 선보였고, 이후 2001년 3인극으로 재정비되어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바 있다. 국내에서는 2001년 초연을 올렸고, 이번에 올린 7번째 시즌에서는 앙상블 5인을 더해 8인극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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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신시컴퍼니 |
스포츠W는 최근 서울 강남구 소재의 코엑스 아티움에서 뮤지컬 ‘틱틱붐’의 ‘수잔’ 역으로 출연 중인 김수하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5년 대한민국 여자 배우 최초로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앙상블과 ‘킴’ 커버로 데뷔, 이후 ‘킴’ 역을 따내고 세계 각지에서 공연했다. 2019년에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통해 한국에서 데뷔하고 ‘하데스타운’, ‘아이다’, ‘레 미제라블’ 등 굵직한 작품에 주연으로 연이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해 서른을 맞이한 김수하는 주인공 존처럼 서른살에 ‘틱틱붐’이라는 작품을 만나게 됐다. 그는 서른에 이번 작품을 만나게 된 게 운명이라 말했다.
“‘틱틱붐’에서 제가 부르는 넘버 ‘Come to Your Senses’가 입시곡이나 학창시절 솔로곡으로 많이 쓰이는 곡인데 저는 단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었어요. 친구들이 부르는 것만 보면서 좋은 곡이라고 생각만 했지, 인연이 안 닿았었는데 이렇게까지 어려운 곡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었어요. 이번에 연습하면서 깜짝 놀라고 절망에 빠졌었죠.(웃음)”
존과 김수하는 모두 서른을 맞이했지만, 같은 순간을 두려워했던 존과 달리 김수하는 오히려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스 사이공’의 킴이나 ‘외쳐 조선’의 진처럼 어리지만 당찬 역할을 많이 맡았거든요. 내게 성숙한 면이 좀 아직 없는 걸까 싶어서 빨리 나이를 먹고 언니들처럼 멋있는 역할을 너무 맡고 싶었어요. 근데 이제 서른이 넘어가니까 어린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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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신시컴퍼니 |
뮤지컬배우로서는 10번째 생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에 김수하는 “예전에는 언제 10년 차가 될지,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는데 지금은 제가 하나도 변한 게 없고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은데도 상상만 하던 10년 차에 벌써 와있다는게 너무 두려워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가족, 친구들이 다 있고, 외국어로 공연을 안 해도 되는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모든 게 다 너무 좋고 행복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선배들이 무대에 서는 게 너무 두렵고, 부담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이해가 안 갔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행복하게 하면서 돈까지 주는데 왜 무서울까 싶었어요. 근데 작년부터 너무 두렵더라고요. 딱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언니들이 했던 고민을 그대로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관객분들을 더 만족시켜 드리고 기쁘게 해드릴지 깊은 생각과 고민에 빠져있어요.”
서른의 김수하에게 고민과 추진력을 동시에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닌 책임감이다. 그는 해외에서 활동할 때는 한국인 배우로서, 현재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롤모델로서 무게를 견디고 있다.
“외국을 나갔을 때 배우 친구들이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 잘하냐고 말했을 때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어쩌면 내 다음에 올 수 있을지 모르는 후배들을 위해서 완벽하게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저는 뮤지컬 꿈나무 팬들이 많아요. 입시나 대학 공연을 앞두고 팁을 얻고 싶어 하는 질문이 많이 들어오고, 어떤 친구는 저를 보고 뮤지컬배우를 꿈꿔서 대학에 입학했다고도 했어요. 막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면서도 그 친구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려면 잘 해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틱틱붐’은 김수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팬들에게 전해주고픈 말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제가 영국에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엄마가 2~30대에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힘이 있으니까 실패하고 돌아와도 괜찮다고 말해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저 역시 어린 친구들에게도 실패해도 된다고, 언제든 다시 시작해도 된다고 얘기를 해요. ‘틱틱붐’의 서른과 2024년의 서른은 다르지만, 어떤 나이든지 내 인생에 대입하고, 존, 수잔, 마이클에게 이입해서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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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신시컴퍼니 |
‘틱틱붐’의 주인공 존은 조나단 라슨을 투영한 캐릭터로, 그의 작품인 ‘렌트’와 ‘틱틱붐’은 몇십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정작 그는 ‘렌트’의 첫 오프브로드웨이 개막 전날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어 자신의 작품이 데뷔하는 순간에 함께하지 못했다.
2020년 ‘렌트’ 한국 공연에서 ‘미미’ 역을 맡아 활약했던 김수하는 이번 ‘틱틱붐’에 ‘수잔’ 역으로 참여하며 조나단 라슨의 모든 작품과 연을 맺게 됐다. 그는 “조나단 라슨은 90년대 당시에 흥행하던 클래식한 분위기의 작품과는 다른, 주디 라이트의 대사처럼 ‘센세이셔널’한 뮤지컬을 갖고 나온 거죠”라며 조나단 라슨의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에 대해 말했다.
“저는 락 뮤지컬이 너무나 매력적인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 때 워크샵으로 ‘렌트’를 했고, 모린 역을 맡았어요. 그때 작품을 처음 접하면서 ‘렌트’에 완전히 매료됐었어요. 록이라는 장르에는 반항기가 있잖아요. 제 안에 반항기가 있었나 봐요. (웃음) 들었을 때 해소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세상에 반심이 있는 사람들이 들을 것만 같은 락 음악을 조나단 라슨이 뮤지컬로 끌어와서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을 한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틱틱붐’과 ‘렌트’는 서사적으로 연결고리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두 작품에서 묻어나는 조나단 라슨의 개성과 연대, 희망의 메시지는 따스한 울림이라는 교집합을 만들어냈다.
“조나단 라슨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던 아닐까 싶어요.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아직까지 ‘렌트’와 ‘틱틱붐’의 이야기가 관객분들과 배우, 스태프들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조나단 라슨이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썼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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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신시컴퍼니 |
‘틱틱붐’은 조나단 라슨의 1인극으로 시작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무용수이자 존의 여자친구 수잔, 예술을 그만두고 광고 회사에 취직한 친구 마이클이 추가된 3인극으로, 이후 앙상블까지 포함된 8인극까지 변모해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왔다.
이처럼 여러 형식으로 선보여온 ‘틱틱붐’에 대해 김수하는 “수잔과 마이클이 어쩌면 존의 일부분이거나 존이 상상한 모습, 어쩌면 진짜 있었던 모습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여러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강조했다.
“‘주저하는 나’라는 넘버에서 존과 수잔, 마이클이 자기 자신을 삼인칭으로 지칭해서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에서 연출님께서 수잔으로서 부르지만, 존으로서도 불러달라고 하셨어요. 제가 지금 수잔을 연기하고 있지만, 그 노래를 부를 때는 존의 자아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시즌 ‘틱틱붐’은 대본과 음악 외의 요소는 새로 만들었기 때문에 창작극을 준비하는 과정에 가까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이번 시즌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8인극으로 선보이는 ‘틱틱붐’인 만큼 준비 과정에 더 공을 들였다.
“음향, 조명, 무대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번역가님까지 다 연습실에 오셨는데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것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나시더라고요. 너무 센스 있게도 프로그램 북에 감독님들의 한마디가 쓰여 있었는데, 오랫동안 뮤지컬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대단한 분들이 이 작품에 임하면서 풋풋했던 시절의 열정이 다시 꿈틀거리고, 시작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쓰신 걸 읽어보면서 집에서 울기도 했어요. 정말 감동적이고 여러모로 의미가 좋은 작품이라 이 작품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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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신시컴퍼니 |
앞서 김수하는 ‘아이다’와 ‘렌트’에서 ‘틱틱붐’의 연출, 음악 감독과 합을 맞춰본 이력이 있다. 그는 “‘틱틱붐’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가 연출님과 음악 감독님이셨어요”라면서 창작진과의 인연과 작업 과정을 밝히기도 했다.
“연출님은 전체적인 작품의 큰 그림을 보신다면, 배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할로서 극을 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역할로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말할 때 연출님은 너무나 흔쾌하게 좋다고 해주시고, 때로 저희가 너무 과하게 들어갔을 때는 이해가 가는 피드백으로 이끌어주셨어요. 이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극중 많은 부분에 배우들의 숨결이 불어 넣어졌지만, 그중에서도 김수하의 의견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 장면은 수잔 역의 배우가 소화하는 멀티 캐릭터 중 하나인 주디 라이트 팀장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대본에 영어 단어가 그대로 들어있었는데,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발음까지도 공부했던 걸 여기에 써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출님께 ‘영어를 엄청나게 잘하는 척하고 싶은 사람처럼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여쭤봤더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라고 하셔서 미친 사람처럼 했죠. 다른 배우들도 ‘수하야 너 진짜 이거 안 했으면 어쩔뻔했냐’라고 하기도 했어요. (웃음)”
관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직접 무대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느낀 김수하는 “직장인 분들이 정말 공감하시더라고요. 저는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연습실에서는 그냥 제 말투가 웃겨서 웃었는데, 관객분들은 통쾌해하셨어요”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 얻게 된 새로움과도 연결 지어 말했다.
“관객분들이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배우란 감동과 위로를 드릴 수도 있지만, 통쾌함을 드릴 수도 있구나 싶은 새로운 감정을 느꼈어요. 또 팬분들은 이런 제 모습을 본 적이 없으시잖아요. 팬분들께도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도 자꾸 비련의 여주인공을 했는데, 이제야 제 옷을 입은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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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신시컴퍼니 |
극 중 수잔 역을 맡은 배우는 주디 라이트 팀장 역을 비롯한 4개의 캐릭터를 모두 소화해야 한다. 멀티 캐릭터를 소화하는데 있어 김수하는 이입이 깨지지 않게 모든 캐릭터가 분명히 달라야한다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다고 말했다.
“존의 에이전트, 로사를 연기할 때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따라했는데 아무래도 사람의 목소리에 한계가 있잖아요. 목을 긁지 않으면 다른 점이 안 보였고, 목을 긁으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잠깐 나오는 거고, 목이 가더라도 그 다름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제 한 몸을 불사른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매 회차 무대에서 열정을 다하고 있는 김수하가 에너지를 얻는 창구는 관객석이다. 그는 “무대에 서보면 저희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커요”라고 말하며 객석을 채워준 관객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마지막 곡을 부를 때 조명이 밝게 비춰져서 울고 웃는 관객분들의 얼굴이 다 보여요. 그 중에서 자주 오시는 팬분들의 얼굴도 보이는데 천 마디의 말보다 눈빛 하나로 치유가 돼요. 학교 다닐 때 모든 무대 예술의 완성은 관객이라고 배웠는데 요즘 너무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그래서 한 자리 한 자리를 메꿔주신 관객분들이 정말 소중해요.”
신년을 앞두고 김수하는 하루하루 건강하고 재밌게 보내는 ‘소확행’을 언급하며 2025년 목표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걸 건강하게 해내는 것을 꼽았다.
“저는 늘 위로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인생을 사는 게 행복하지만은 않고, 지치고 화나면서 힘든 순간도 많은데 제 팬분들, 관객분들이 오셨을 때 2시간, 3시간 만이라도 위로를 받고 행복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어요.”
한편 뮤지컬 ‘틱틱붐’은 배두훈, 장지후, 이해준, 김수하, 방민아, 김대웅, 양희준 등이 출연하며, 내년 2월 2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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