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결성 15년 차에 접어든 양손프로젝트가 파격적 희곡 ‘유령들’로 입센 3부작의 화려한 막을 연다.
연극 ‘유령들’을 탄생시킨 양손프로젝트의 박지혜 연출,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 배우는 최근 서울 강서구 마곡 소재의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국내 언론들과 라운드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양손프로젝트는 네 구성원 모두가 각색·극작·연출·연기를 소화하는 공동창작집단으로, 2011년 결성되어 올해로 결성 15년 차를 맞았다. 탁월한 미니멀리즘 연극을 선보이는 이들은 이번 신작 ‘유령들’ 역시 빈 무대와 최소한의 소품, 그리고 배우들의 힘만으로 이야기를 선명히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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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손상규, 양조아, 박지혜, 양종욱 [사진=LG아트센터] |
‘유령들’은 양손프로젝트가 3년간 선보일 ‘입센 3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조각이다. 헨리크 입센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희곡의 거장으로 ‘인형의 집’, ‘민중의 적’, ‘헤다 가블러’, ‘들오리’ 등의 작품을 통해 사회를 날카롭게 통찰했다. 이들은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헨리크 입센의 희곡을 매년 한 편씩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박 연출은 “소설을 바탕으로 작업했을 때 작가 중심으로 작품을 골랐던 경험이 있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함께 공연하면서 그 작가의 세계를 다양한 층위에서 탐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는 희곡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보자고 의기투합이 됐다”고 입센 3부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양손프로젝트는 그간 입센 작품을 한번도 무대에 올려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모두 입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손상규는 “입센은 날카로우면서도 군더더기가 없고, 미사여구 같은 장식 없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서 직진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게 저희 취향하고도 맞는다고 생각했다”며 결정적인 이유를 전하기도 했다.
앞서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업을 이어가던 양손프로젝트는 이번 작품을 통해 희곡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두 포맷의 차이에 대해 박 연출은 “소설 작업할 때는 이 작품이 무대화된다는 상상을 좀 더 추상적으로 하게 되는데 희곡은 무대 지문이 있고 행동 지문까지 다 적혀 있어서 매우 구체적인 지도를 보는 것 같다”며 이번 작업에 있어 신경쓴 점을 함께 설명했다.
“좋은 건 어떠한 상황이 정확하게 그려져서 무대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보인다는 건데, 저희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했다. 이 희곡이 나를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에 해체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어찌 되었든 각색이 들어갔으니, 희곡을 소설처럼 작업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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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LG아트센터 |
엄연히 성격이 다른 재료였음에도 단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굳건했다. 손상규는 “어떤 재료든 어떻게 시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중점에 두는 것 같다. 세세하게 설명해서 그려내는 건 소설이 굉장히 잘하는 일이고, 그걸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장황한 설명이나 구구절절한 얘기 없이 명확히 전달할 것인지를 방향성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세기 노르웨이에서 쓰인 희곡을 21세기 한국 무대에 올리기 위해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중시한 것 중 하나는 해석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박 연출은 “고전의 중요한 상징과 문학적인 표현들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우리가 실제로 주고받는 말처럼 각색하려 했다”고 중점을 둔 부분을 답했다.
“실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말과 감각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언어를 쓰려고 했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그 당시에 민감하고 금기가 되는 것들이 많아서 굉장히 돌려 말하며 직접적인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부분을 너무 감추지 않고 드러내면서 직설적으로 표현을 하려고 했다.”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작업을 진행했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무려 두 달 넘게 테이블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한 이들은 대본을 다시 번역하는 것부터 각색을 시작했다고 한다.
“번역본을 봐도 옛 어투가 많아서 분명 주고받는 말인데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렇게 저희끼리 공유하는 번역본이 먼저 나오고 공동 문서로 작업했다. 또 보통 배역이 정해져야 나의 말에 맞게 대사를 고치고 수정하는 일을 하는데 늦게 정하는 바람에 모두가 모든 역할을 해봤다. 여러 버전으로 각색해 보기도 하고, 즉흥을 통해 찾은 걸 반영하기도 하면서 대본 수정을 계속 이어갔다.” (박지혜)
심혈을 기울인 각색 과정에서 행했던 수많은 즉흥 연기는 대본을 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작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알빙 부인의 대사 ‘나는 달라질 거야. 나는 벗어날 거야, 나는 자유로워질 거야’ 역시 즉흥 연기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이에 양조아는 “서로의 역할을 즉흥으로 많이 해서 본인이 감각한 언어들이 많이 나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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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LG아트센터 |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역이 계속 바뀌었다. 원래는 손상규 배우가 알빙 부인을 하는 게 거의 확정된 상태였고, 즉흥을 하면서 나온 그 대사가 대본화가 됐다. 저희끼리 각자 뱉었던 대사들이 서로 반영되기도 하고, 배역이 바뀌면서 변형되기도 한다. 서로의 말들이 출현하고, 튜닝 되고, 정착되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는 창작 과정을 겪게 됐다.” (양종욱)
반면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 결정된 요소도 있었다. 이번 ‘유령들’은 보편적인 1면 무대를 사용하지 않고, 무대 4면을 둘러싸고 있는 아레나 형태의 객석에 관객들을 배치했다. 이에 관해 박 연출은 “1면 무대를 보는 관객은 나와 분리된 세계를 관찰할 수 있고, 어떠한 그림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것보다는 이 안에서 벌어지는 다이내믹을 체험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관객이 얽히고설키는 배우들의 시선을 따라 자신만의 초점을 선택하며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할 것 같았고, 또 어떻게 보면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으로 작용하면서 공연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리허설할 때 스태프들이 앉아 있는데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서 유령 같더라. 추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부분에서도 이미지가 발생한다는 생각도 했다.”
4면 무대는 연출적인 의도 외의 다른 방면에서도 영향을 끼쳤다. 관련해 양종욱은 “무대 위 배우들뿐만 아니라 관객들끼리도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고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 관극의 근본처럼 느껴진다”며, “모두가 둘러앉아서 어떠한 것을 다 같이 경험하는 게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유의미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양조아는 “1면 무대일 때는 울고 나서 잠깐 뒤돌아 콧물이라도 닦을 수 있는데 이 4면 무대는 정말 숨을 곳이 없다. 알빙 부인이 그 환경에서 경험했을 법한 압박과 억압을 느끼게 해주는 시선들이 연기할 때의 저를 많이 자극하고, 그 인물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 연기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령’의 원제인 ‘Gengangere’은 ‘돌아오는 자’라는 뜻으로 극 중 인물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관습과 관념, 종교 등을 의미한다. 입센은 개인들의 삶을 과도하게 규정짓는 과거의 잔재를 비판하고자 이 작품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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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LG아트센터 |
이러한 작품의 메시지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멀지 않게 느껴진다. 양조아는 “20대 중반 때 학교에서 ‘유령’ 작품의 맨 마지막 장면인 오스발과 알빙 부인이 대화하는 장면을 발표했었다. 그때도 어떻게 하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고리들을 용기 있게 끊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게 되면서 저는 여전히 이 고민과 싸우고 있다고 느꼈다. 인간이 계속해서 감당해 나가고 풀어야 하는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입센의 희곡이 낡지 않게 느껴지는 건 그의 작품이 그리는 여성 서사도 한몫했다. 그의 대표작 ‘인형의 집’의 여주인공 노라를 통해서는 여성 해방 서사를 그렸다면, ‘유령’에서는 전통적 여성상에 갇힌 알빙 부인이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다.
양손프로젝트는 이러한 원전을 확장해 알빙 부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되, 현재의 여성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게끔 굳건함을 더했다. 알빙 부인을 연기한 양조아는 “초반에는 알빙 부인을 그 시대의 고전적이면서 비극적인 인물로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랬더니 연출님이 오히려 더 거리가 멀어지고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현재의 양조아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저항하면서 발버둥 칠 건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원작의 알빙 부인은 순응하다가 자각하게 되는 인물이라면, 저희가 그리는 알빙 부인은 이미 자각이 된 상태에서 웃음으로 자신을 감추고 보호하면서 외부에서 오는 자극과 억압에 무력화되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인물로 그린 것 같다. 자신 있게 웃는 얼굴과 질끈 맨 머리카락, 강렬한 옷으로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여성으로 보이지만 내면의 무언가를 계속 감추는 인물로 그렸다.”
앞으로 양손프로젝트가 그려낼 입센 3부작의 나머지 두 조각은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들이 창작을 해나가는 데 있어 따라가야 할 이정표는 변하지 않았다.
박 연출은 “작업에 있어서 무언가를 선언하거나 주장하는 것을 굉장히 경계한다. 어떠한 인간의 모습에 주목하고, 순간을 함께 경험하되 ‘우리는 지금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듯한 태도가 작품 앞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또 양종욱은 “개막을 앞두고 많은 고생을 했는데, 그때 얘기했던 것 중 하나가 재미가 없으면 버리자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용이나 의미가 좋더라도 실행했을 때 재미라고 표현되는 감각을 주지 못한다면 버리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양손프로젝트 ‘유령들’은 오는 26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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