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작품의 꽃인 2인 20역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더그와 버드는 본인들이 만든 뮤지컬 ‘구텐버그’를 직접 연기하고 노래하면서 주연 배우부터 앙상블 배우까지, 대극장 규모의 배우진을 모두 연기한다. 수많은 배역을 오가는 매개체는 바로 명찰이 달린 모자다.
“모자를 쓰게 되면 인물이 바뀌니까 호흡과 자세를 바꾸는 연극적 형식이 너무 재미있어요. 학교 다닐 때 이걸 훈련하고 신체화하는 훈련을 했었지만, 이걸 무대에서 실제로 한다는 게 재미있죠.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는 힘들지만, 막상 하고 나면 시원하면서도 후련해요. 언제 시간이 흘러갔나 잘 모를 정도로 중간 과정이 즐겁고 재미있어서 금방 휙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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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쇼노트, 랑 |
보통 멀티 배역을 오갈 때 사용하는 보편적인 소도구는 손에 들고 몸에 둘러 착용하는 배우가 확인할 수 있지만, 머리 위에 올려두는 모자는 그럴 수 없다. 재질과 모양이 모두 같은 디자인이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엄연한 작품의 재미 요소 중 하나인 실수로 이어지기도 했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는 머리 위에 겹쳐 쓴 모자를 하나씩 바닥에 내려두면서 역할에 맞는 목소리를 내는데 예를 들어 ‘다른 여인’ 모자를 내려놓으면서 푸줏간 주인 목소리를 내버리면 관객들은 웃기지만 저는 하나도 안 웃겨요. (웃음)” (조풍래)
“런 돌 때쯤에 그 마지막 장면을 연습하는데 순간 의심이 들면 항상 애들이 힐끔거리면서 거울을 봤어요. (웃음)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느라 한 번씩 커닝하는 거죠. 모자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꽤 걸렸죠.” (박영수)
배역을 나타내는 모자에 명찰이 붙어있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는 요소로 배우들은 모자를 바꿔 쓸 때마다 순식간에 성별, 나이, 성격을 바꿔 연기해야 한다. 목소리는 그를 나타내는 주요한 장치로 박영수와 조풍래는 수많은 배역들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며 열연을 펼쳤다.
“작가인 더그가 떠올린 어울리는 이미지를 적용했어요. 헬베티카는 여자 주인공의 이미지니까 누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어떤 한국 배우와 비슷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저는 비슷하다 생각하지만, 안 비슷할 수 있어서 누군지는 비밀이에요. (웃음) 구텐버그는 전형적인 대극장 남자 배우를 생각했죠. 이 외에도 푸줏간 주인은 푸짐한 아저씨, 젊은 수도사는 키 작은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조풍래)
“음성학적으로 목소리를 바꾸는 게 긴장도가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제일 목에 부담이 제일 많이 간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구텐버그’를 준비하면서는 성우분들도 트레이닝 하신 보컬 선생님이랑 계속 훈련했어요. 목소리에 맞는 음역대와 근육 모양을 한 번에 만드는 게 어려워요. ‘반유태주의 꽃 파는 소녀’와 ‘여인의 딸’도 같은 여자아이 캐릭터지만 긴장도가 다른데 관객분들은 구별하기가 어려워서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죠. 특히 연기와 움직임을 같이 해버리면 고정된 발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흔들려버려서 쉽지 않아요.”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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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쇼노트, 랑 |
여러 요소로 객석에서 쉴 틈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오는 ‘구텐버그’의 장르는 부정할 수 없는 코미디이지만, 이 작품과 단순한 코미디쇼의 가장 큰 차이는 작품 자체가 웃음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면 안 된다는 지점에 있었다.
조풍래는 “‘구텐버그’는 굳이 뭘 하지 않아도 대본 자체가 재미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고, 브로드웨이에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어설픈 모습이 웃기게 다가오지만, 후반부에 보면 감동도 주게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결국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본질을 짚었다. 이에 박영수 역시 동의하며 작품에서 코미디 요소를 선보일 때 주안점을 둔 부분을 설명했다.
“코미디가 너무 어려운 게 개그맨들은 정말 웃기기 위한 것들을 쓰지만, 저희는 무대 위에서 웃긴 인물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저 이 작품을 준비하는 서툰 사람들의 열정적인 마음이 관객들에게 귀여워 보이는 것이고, 두 친구의 마음이 온전히 이 작품 안에 담겨 있어야 해서 후반부의 감동적인 부분이 잘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마냥 웃겨서는 안 되고 기준을 잘 세워서 해야 하는 작품이라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 무대에 서는 작가와 작곡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마지막을 보고 달려가는 것 같아요.” (박영수)
따라서 이들이 작품을 위해 해야 했던 건 선을 넘는 것이 아닌, 지키는 것이었다. 조풍래는 ‘구텐버그’를 탄생시킨 작가로서 작품을 소중히 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박영수는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나 두 친구에 관한 이야기임을 망각하지 않았다.
“더그는 작가이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작품이 객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길 바라는 인물이죠. 그래서 잘 해내기 위해 버드와 연습도 많이 해 가면서 시연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작품임에도 허점이 보이니까 당황하는 모습이 웃기고 귀여워 보이는 거지, 제가 이 작품에서 웃기기 위해 뭘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제가 제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질까 봐 그 선을 잘 지키려고 하고 있어요.” (조풍래)
“극을 시작할 때 피아니스트 친구들이 이건 구텐버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더그와 버드 두 친구의 이야기라고 말해주는 게 정말 중요하고, 이 작품의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작품을 올릴 수도 있겠지만, 같이 뚝딱거리면서 안 맞을 때도 있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코미디로 보일 수도 있고, 열정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이런 친구와의 관계성이 하나의 기준인 것 같아요. 어느 선을 넘으면 친구라고 하더라도 사이가 안 좋아지잖아요. 그 선을 온전히 잘 소중히 지켜야 단순한 개그가 아닌 두 인물 간의 관계성으로 이끌어가는 극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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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쇼노트, 랑 |
이처럼 ‘구텐버그’의 주인공은 더그와 버드이지만, 극중극 ‘구텐버그’의 주인공은 인쇄기를 발명한 독일의 세공업자 겸 인쇄업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다.
작품을 쓰고 불태우는 과정을 반복하며 프린트와 절친이 된 더그가 우연히 떠올리게 된 이 소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법칙인 ‘유명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기’를 그대로 따랐지만, 고작 기록물 몇 건으로밖에 전해지지 않는 그의 인생을 그대로 극적인 뮤지컬로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요소를 하나씩 따와 구텐베르크의 인생에 끼워 맞춰 히스토리컬 픽션(historical fiction)을 구축하게 된다.
“대사 중에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말을 계속하는데, 브로드웨이 작품들에는 일단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은 유명한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구텐베르크를 선택한 건 우리의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올리겠다고 하는 야심 찬 계획이 숨어 있는 거죠. 큰 포부와 열정으로 구텐베르크를 소재로 선택하고 그 인물을 조사했지만, 막상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속을 채우기 위해 수도사와 사랑했던 여인같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있는 형식을 조금씩 빌려오게 된 것 같아요.” (박영수)
여기에 마치 과제물을 만드는 것처럼 뮤지컬의 기본적인 요소를 빠짐없이 넣은 더그와 버드의 ‘구텐버그’는 마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템플릿에 짜 맞춘 것 같은 전개와 연출을 선보이지만, 동시에 온갖 허점이 널려있다는 점에서 웃음을 주기도 한다.
“더그와 버드가 만든 뮤지컬은 모든 게 정형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사실 악역인 수도사의 옆을 따라다니는 젊은 수도사의 기능적인 역할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만약 젊은 수도사 역에 누군가를 캐스팅한다고 했을 때 그 배역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 싶죠. (웃음) 뮤지컬의 요소인 쇼 스토퍼(Show stopper)나 아이 원트 송(I Want Song) 같은 요소를 등장시키기 위해서 장면이라는 장면은 다 했는데 극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빈틈투성이인 거죠.” (조풍래)
“작품을 만들 때도 연출님과 더그와 버드가 배우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까 연기에 해당하는 누군가를 다 지정해놨을 거라는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러다 보니 클리셰적인 연기를 많이 하는거죠. 젊은 수도사에서 연상되는 ‘드라큘라’의 렌필드나 ‘록키호러쇼’의 박사 옆 조수한테 어딘가 모자른 느낌이 계속 따라오듯이 클리셰적인 부분들을 다 조금씩 카피해 온 느낌이 강해요.”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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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쇼노트, 랑 |
이렇게 어설프고 허당끼가 넘치는 두 창작진의 모습이 사랑스러움을 넘어서 감동까지 전달하는 이유는 이들이 보여주는 뮤지컬에 향한 열정에 있다. 각각 2002년, 2010년 데뷔해 올해로 23년차, 15년차 배우가 된 박영수와 조풍래는 ‘구텐버그’ 속 더그와 버드를 통해 얻게 된 따스한 에너지에 대해 말했다.
“최근에 어떻게 하다 보니까 영수와 동시에 쉬는 기간이 있었어요. 그때 여행도 다니고 휴식을 취하면서 예전에는 꿈이 배우, 부자 같이 멈춰있는 단어였다면, 요즘은 웃자, 행복하자 같이 행동하게 되는 단어로 바뀌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와중에 ‘구텐버그’가 꿈에 대해 얘기하니까 저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줬죠. 또 랑이라는 회사가 정말 가족같이 편하고 돈독한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하는 회사라서 그런 회사와 이 작품에 같이 참여하는 여섯 배우, 창작진과 함께하다 보니까 연습 과정과 공연하고 있는 지금도 따뜻함이 느껴지고, 극장과 연습실을 가는 게 굉장히 즐거워요.” (조풍래)
“더그와 버드의 이야기는 실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열정에 관한 이야기에요. 저한테 이들만큼의 엄청난 열정이 있었던 건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지금은 열정보다는 유지,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고, 안정된 배우의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크죠. 그러다 보니 이만큼의 열정을 가진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 부럽더라고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이 친구들은 시작이라는 걸 하게 되니까, 전 또 어떠한 시작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덕분에 다음 작품을 준비하면서 옛날에 읽었던 책들도 꺼내 보게 되고, 어떻게 또 다른 열정을 끄집어 올릴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박영수)
이러한 경험과 연결 지어서 조풍래는 ‘구텐버그’가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말하기도 했다.
“현생에 지친 분들이 오셔서 이 작품을 통해 ‘아, 나도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 저런 열정이 있었지’ 하고 그때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요즘 제 주변에 이미 회사에 다니면서 매달 들어오는 월급만 기다리거나 ‘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으로 망설이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에게 이 공연이 작은 전환점이 되었으면 해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고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가셨으면 합니다.” (조풍래)
한편 ‘구텐버그’는 오는 20일까지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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