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스포츠W 노이슬 기자] “’헤어질 결심’과 반대되는 스타일을 원해서 꽉꽉 눌러담았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개봉 5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독특한 색감과 연출, 긴장과 유머를 넘나드는 전개와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시너지까지 영화 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022년 ‘헤어질 결심’으로 새로운 도전을 선보였지만, 다시 초심이다. ‘어쩔수가없다’는 20년간 바라왔던 감독의 염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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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사진=CJ ENM] |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유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 된 후 아내(손예진)와 두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박찬욱 감독의 12번째 장편 영화로, 제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선정, 제50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국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표 블랙 코미디가 주요 관람 포인트로, 배우들의 행동은 물론, 말맛의 재미 요소도 다분하다. 전 세계 관객들에게 먼저 선보인 후, 개봉을 앞두고 스포츠W와 만난 박찬욱 감독은 “한국인밖에 못 알아듣는 유머는 많이 쓰지 않았다. 영어로도 적절하게 해석돼 웃길 수 있게 했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도 제가 의도한 순간마다 다 웃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많이 웃고 끝나고 박수도 나와서 좋았다”고 했다.
무려 20년을 품었다가 드디어 세상에 내놓은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초심과 그로테스크한 매력이 도드라진다. 특히 전작인 ‘헤어질 결심’(이하 ‘헤결’)과는 결이 달라, ‘헤결’로 박찬욱 감독 영화를 처음 알게 된 사람이라면 상반된 매력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헤결’은 시적이고 여백이 많은 영화니까 함축적이다. 말수가 조금 적고,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수가없다’의 경우는 말이 많다. 하지만 설명적인 것이 아니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관객에게 들려주는 대사가 아니다. 그것으로 파악하게 의도한 것이다. 시각적인 면에서나 편집처럼 대사도 재밌게 했다. 말맛도 재밌게 하려고 했다. 원작을 ‘한국화’하는 과정에서 이경미 감독과 함께 만들었다. ‘너도 잘생겼잖아’는 이경미 감독이 만든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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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만수의 온실 스틸 [사진=CJ ENM] |
‘어쩔수가없다’의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가는 주역은 만수다. 그는 가장으로서, 자신이 실직한 후 가족들에게 일어난 변화에 죄책감을 갖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라이벌을 죽인다. 그래서일까. ‘헤결’은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어쩔수가없다’는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박찬욱 감독은 “‘헤결’은 여성적인 느낌이 어딘가 모르게 있다. 박해일이 초식남 그런 느낌이고 여백이 많은 영화였다. 어딘가 모르게 시적인 느낌이다. ‘어쩔수가없다’는 반대되는 스타일을 원해서 꽉꽉 눌러 담았다. 프레임 안에서도, 편집에도 여백이 없는 영화다. 미리(손예진)와 아라(염혜란)가 나오지만 만수의 이야기다. 만수가 제거하는 대상들이 그의 거울 같은, 분신 같은 면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남성성에 대한 탐구가 주제이기도 하다. 마초적인 영화도 아니지만, 연민 어린 조롱 같은 것도 있다. 현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남편, 아빠, 직장을 잃으면 정체성이 붕괴되는 것 같은 남자들의 이야기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크랭크업 소식과 함께 공개한 첫 스틸은 이병헌, 손예진이 함께 춤을 추는 단란한 모습이었다. 어떤 고민도 느껴지지 않고 행복해보이는 가족의 모습은 오래된 배롱나무가 함께했다. 이후 공개된 모든 포스터에도 배롱나무가 항상 등장했다. 마치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물의 심리 상태, 영화의 주제, 그리고 극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미장센(화면 구성) 요소로 작용하는 박찬욱 감독 영화 속 ‘벽지’ 같았다. “만수의 집 정원에 눈에 띄는, 강한 인상을 주는 나무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롱나무는 오래될수록 껍질이 별로 없고, 마치 사람의 근육같다. 운동을 많이 한 남자의 알통 같은 모습이다. 근육 같은 몸통에 비해 꽃은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 그런 모습이 대비되는 나무가 흥미로웠다. 그래서 각본에서도 이미 썼다. 포스터 촬영을 위해 비싼 나무를 사서 썼다가 팔았다.”
또 다른 벽지는 영화의 제2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는 만수의 집과 그가 직접 지은 온실이다. “만수의 성격과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아버지가 돼지 농장할 때 지은 집일 것이다. 그 근처에는 돼지 2만마리가 묻혀 있을 것이고, 만수가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그 집을 산 후에는 창고를 없애고 온실을 지었다. 온실을 만들고 안정 된지 얼마 안됐을 것이다. 그런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남편들에게는 로망의 장소다. 성취한 지 얼마 안됐을 장소다. 만수의 배경에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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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사진=CJ ENM] |
‘어쩔수없다’는 배우 이병헌(만수 역)의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카메라 워킹도 인상적이다. 또한 ‘어쩔수가없다’라는 말을 빌미로 라이벌을 죽이는 만수를 클로즈업하며 공감하게 했다가, 제 3자의 시선으로 멀리 떨어져서 방관하는 듯한 카메라 워킹도 신선하다. 김형우 촬영감독과는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년 미국 시리즈) 이후 두번째 호흡이다. “김형우 촬영 감독은 굉장히 대담하고 용감한 시도를 좋아한다. 과감한 것을 좋아한다. ‘헤어질 결심’과 상반된 스타일을 원했기 때문에 그게 잘 맞았다. 신나게 재밌게 주저하는 것 절제하는 것 없이 하고싶은 것 다 하자고 했다. 필름 룩을 원했지만, 현상소가 불안정해서 한국에서는 어렵더라. 카메라 렌즈 조명 후반 색보정까지 수행하면서 이전의 그 어떤 영화보다 필름 룩을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색도 과감하고 콘트라스트도 다른 영화보다 높았고, 시각적으로 강렬했다. “
또 박 감독은 “이병헌과 가장 많이 애기한 포인트가 ‘너무 납득되면 안 된다’ 였다. 배우는 관객이 완전히 공감하고 완전 동일시해서 따라가는 존재라서 걱정이 있었다. 나도 어떻게 해도 저정도면 3명쯤 죽여도 되겠지를 용납하게 만들 수 없다. 재취업하지 못하면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게 만들면 된다. 그 사람을 용납할 수 있냐는 질문을 관객들이 계속해서 하길 바랐다. 관객을 한편으로 끌어들이지만 카메라는 약간의 거리도 두면서 ‘저게 맞나’, ‘그만하면 좋겠는데…’라는 도적적으로 전락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만수가 가진 도적적인 딜레마도 우리는 안다. 질문할 수 있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박 감독은 매 작품 흥행에 목마름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마니아’나 ‘씨네필’이 아니라면 대중은 감독의 영화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는 것이야 말로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까지 주연 라인업은 역대급으로 화려하다. 믿고 보는 배우들이 총출동한 라인업은 캐스팅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들의 시너지야말로 흥행을 이끌 수 있는 ‘대중성’이다. 그 중심에 있는 이병헌은 ‘공동경비구역 JSA’, ‘쓰리, 몬스터’ 이후 3번째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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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쩔수가없다' 이병헌 스틸 [사진=CJ ENM] |
“이병헌씨는 인간적으로나 직업인으로서나 똑같은 평가를 하는게 그 사람은 순수함이 장점이다. 잡념이 별로 없고 고정관념도 별로 없다. 자기의 독선적인 아집도 없다. 정치적인 견해도 뚜렷하게 선명하지 않다. 어떤 영화를 시작할 때 백지로 시작할 수 있다. ‘에이 어떻게 그래요?’라는 이야기를 별로 안한다. 인간을 관찰하면서 방대한 데이터가 폭이 넓다. 그게 기초가 되어있다. 표현력이 굉장히 뛰어난데, 대부분의 장면에 등장할 정도가 되면 중반부 쯤에는 관객도 지친다. 근데 표정이 다양하고 몸짓도 다양해서 상황 상황에 맞춰서 꺼내 쓰기 좋은 배우다. 피아니스트가 88개의 건반을 쓴다면, 이병헌은 손가락도 30개는 되는 것 같다. 건반도 200개 300개를 쓰는 것 같은 배우다. 무엇보다 상대 배우와의 시너지가 좋다. 상대를 빛나게 하면서 자신도 빛날 줄 아는 사람이다.”
영화는 마치 만수의 모험, 만수의 도장깨기처럼 아내 미리와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만수가 만나러가는 과정부터 담겨있다. 이병헌의 방대한 분량에 비해,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배우들은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존재감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이 조연들이 만수와 함께 계속 등장하면서 뒤에도 나온다면 유명하지 않은 배우였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각각 시퀀스에 나온 후 빠진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 나온다. 처음부터 이 인물들이 강하고 잘 알려지고 그런 큰 배우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등장하는 순간만큼은 관객들이 이병헌과 그들을 대등한 무게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잠깐씩 나와서 그 시퀀스를 장악하고,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만약 신인들이나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이 했다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서 지켜보는 시간이 길어져야 했을 것이다.”
극 중 만수는 자신의 라이벌을 정한 후 구범모(이성민), 고시조(차승원)를 차례대로 처리해 나간다. 특히 구범모는 제지업계 베테랑이었지만 지금은 만수와 같은 처지에 놓인 구직자다. 이에 만수는 범모-아라(염혜란)의 모습에 미리와 자신을 대입하기도 한다. 또한 미리와 아라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원작에 있는 요소에서 더 많이 강조한 것이 남성성인데 그것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려면 대비되는 존재가 필요하다. 남자들 이야기를 자칫 잘못 파고들면 과도한 연민, ‘우리의 아빠들은 다 불쌍하다’, 등 가장에 대한 고정관념의 영화가 되면 안 된다.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현실적인 여성 인물들이 필요했다. 만수는 아라를 보면서 ‘내 와이프도 저런 생각을 할텐데’라고 느끼는 것이다. 미리는 완벽한 인간은 아니지만, 성숙하고 시야가 넓은 사람이다. ‘당신이 무슨 안 좋은 일을 해도 나도 같이 하는거야’ 대사가 그래서 중요하다. 미리는 남편이 왜 그러는지 다 알고, 거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편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엔딩은 열린 결말로, 관객마다 해석이 다르다. 또한 AI(인공지능) 시대에 맞서 살아가야 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원작 읽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꼈다. 모던 타임즈 같더라. 자본주의 시스템 속의 톱니 바퀴 같은 한 개인의 이야기라서 코미디가 점점 강해진다. 만수의 어리석고 어설픈 데서 오는 코미디가 이 영화의 비극성이고 근원이다. 아라도 해고 자체도 비극인데, 실직에 대처하는 자세가 문제라고 하지 않나. 그것이 가족을 지킨다는 사고방식이 어리석은 것이다. 종잇밥 25년차지만 새로운 일에는 어리숙하고 허둥지둥하고 우왕좌왕한다. 그런데서 코미디도 나오고 연민도 생긴다. 그래서 엔딩은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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